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참다운 도가 아니고
이름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참다운 이름이 아니다.
이름 없는 것, 그것이 천지의 근원이고
이름 붙인 것, 거기서 만물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영원한 무(無)로써 그 근원을 볼 수 있는 것이며
영원한 유(有)로써 그 현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양자는 한곳에서 나와 이름만 달리할 뿐
둘 다 동일한 것을 가리키나니,
어둡고 또 어두운 가운데
모든 신비의 문이 있도다.
가. 붓다, 노자, 예수
참 도(道)는 언어를 넘어서 있다. 우리 인간은 언어를 통하지 않고서는 사물에 대한 인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는 물론 진리탐구에 있어서도 언어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그러나 실재는 언어가 아니며, 달은 손가락이 아니고, 영토는 지도가 아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이름을 붙여도 이름은 결코 사물이 아니다. 언어는 하나의 관념이며 상징이다. 그것은 실재가 아니라 실재에 대한 조잡한 근사치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물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어느 지점까지는 언어가 도움이 되고 유익하지만, 어느 지점을 벗어나면 그때부터는 언어가 오히려 심각한 장해물이 된다. 그 언어로써 지칭하는 바의 사물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그때부터는 언어를 내려놓고 직접 실재를 대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언어를 내려놓지 못하고 오히려 그 언어에 집착하고 그 언어를 신성시하여 그 언어 주변을 온갖 꽃과 향으로 장식하려 한다.
표층의식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심층의식에는 언어가 없다. 표층에서 심층으로 내려가면 점점 언어가 소멸한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심층의식에는 '언어'는 없고 '달(月)'만 있다.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자란 다름 아닌 이 심층의식에 들어갔다 온 자를 말한다. 그는 그곳에 가서 '달'을 보았다. 말하자면 그는 존재의 내면에 깃든 '불가사의'를 본 것이다. 그는 그것을 보고 와서 제자들에게 '달'이 있다고 모든 언어와 문자를 동원하여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달'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근원적인 체험이 없다. 여기서 그들은 언어와 문자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달'을 보고 온 사람은 '달'이 있다는 것을 전해줄 의무가 있다. 이것이야말고 인류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복음을 전파할 의무라 할 것인데, 그러나 이 의무를 행함에 있어서는 완급조절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너무 힘주어 말하면 제자들은 그 단어와 문장에다 밑줄을 긋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대한 스승들은 자기의 가르침을 한 번씩 뒤집어엎는다. 제자들이 밑줄을 긋지 못하도록. 앞서 우리가 살펴본 붓다의 '염화시중(拈華示衆)'이 바로 그런 것이다. 왜 밑줄을 그으면 안 되는가? 밑줄을 그으면 진리는 사라지고 대신 교리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사이비 예언자란 자들은 항상 어떤 집단과 한패가 되어 무리지어 서 있다. 그는 결코 홀로 서 있는 법이 없다. 그는 언제나 어떤 패거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이다. 그에게는 진리를 볼 수 있는 자유로운 시야가 확보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그가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필경 진리일 수가 없으며 다만 그 집단을 위한 진리, 즉 집단이기주의의 합리화에 불과한 것이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사실 이것이다. 그들은 사이비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달콤한 소리를 원하는 것이지 결코 진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 우상숭배의 문제
"남들의 도는 참다운 도가 아니고 자신의 도만이 참다운 도라고 말하는 자들 때문에 세상은 이토록 추한 것이다. 그런 자들을 경계하라.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도에도 경계하라. "
우상숭배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행위의 형식 여하를 막론하고 '절대(絶對)'를 '상대(相對)'화 시키는 일체의 언어와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절대가 상대화되면 그 다음 생기는 일은 절대와 상대가 혼동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자기가 이름붙인 상대를 절대로 착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종교만이 절대적으로 옳고, 자신이 믿는 신만이 절대적으로 위대하다는 심대한 착오에 빠진다. 절대자를 상대자로 격하시키는 일, 혹은 절대를 상대로 혼동하는 일은 어디서 나타나는가? 그것은 바로 '관념의 우상'을 통해 나타난다.
잘못된 언어와 이름을 동원하여 무한자(無限者)를 유한자(有限者)로 한정시켜저리는 행위,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의 결정적 의미이다.
신은 인간이 아니다. 신에 이름을 붙이지 마라. 누가 붙인 이름이든 그 이름을 넘어서라. 이름에 머리를 조아리지 마라. 이름을 꽃이나 향으로 장식하지 마라. 그것이 어떤 이름일지언정 부디 이름에 절하지 말고, 이름에 예배하지 마라. 그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의미의 우상숭배이다.
라. 본체계와 현상계
그럼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한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노자는 지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행간 깊숙이 이 질문을 깔아놓고 있다. 이것은 노자의 '도덕경' 전체를 관통하는 중대한 질문이다. 본체의 세계(道)를 추구하며 살 것인가 현상세계를 추구하며 살 것인가? 본체의 세계만이 의미 있는 것이고 현상세계는 무의미한 것인가? 또는 본체의 세계와 현상세계를 조화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방식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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