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에 물보다 부드러운 것은 없다.
허나, 굳세고 강한 것을 물리치는 데
이보다 나은 것은 없으며
이를 대신할 것도 없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는 것,
세상 사람들 다 알고 있으나
실천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성인의 말씀에 이르기를
온 나라의 치욕을 끌어안는 것을
사직의 주인이라 하고,
온 나라의 불행을 끌어안는 것을
천하의 왕이라 하였나니,
바른 말은 마치 진실에 반대되는 것 같구나.
가. 두 가지
지식공부는 지식을 가르칠 뿐, 인간을 가르치지 못한다. 가장 많은 지식을 가진 자가 가장 사악한 심성의 소유자라면 그 해악은 이루말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국가의 가장 고급정보를 매만지는 자가 한순간 교활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품게 되면 그 폐해는 어마어마할 것인데,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은 인류가 탄생한 이래 계속되어 왔던 문제이며, 또한 현인들이 오래도록 숙고해왔던 문제이다. 인간사회의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라톤은 '국가'를 저술하여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거나 통치자가 철학을 배우거나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통치자란 자들은 철학을 잘 배우려 하지 않기 때문에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 점을 장자는 약간 다른 뉘앙스로 이야기했는데, 그는 '진인이후유진지(眞人以後有眞知 : 참 사람이 있은 연후에 참 지식이 있다)'라는 말로써 이 문제의 핵심을 찔렀다.
노자가 '도덕경'을 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노자의 모든 말은 한 마디로 마음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노자는 이 세상 어떤 철학자보다도 마음공부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사람이다. 플라톤은 논리학 · 기하학 · 대수학 등 일반 학문도 철학교육의 일부로 포함시켰지만, 노자는 예리한 통찰로써 도(道)와 학문(學)을 구별하여 학문은 결코 도가 될 수 없음을 알려주었던 것이다.그렇다. 세속의 학문은 넓은 의미에서 철학의 이수과목에 포함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들은 결코 마음공부라고 할 수는 없다.
노자가 마음공부를 위해 예로 드는 대표적인 사물이 다름 아닌 물이다.
나. 물
천하에 물보다 부드러운 것은 없다.
허나, 굳세고 강한 것을 물리치는 데
이보다 나은 것은 없으며
이를 대신할 것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여리고 부드러운 것이 물인데, 이 물이 바위를 뚫고 산을 무너뜨린다. 물은 아무리 강한 적을 만나도 피해갈 뿐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다. 물은 어떤 누구와도 싸우지 않는 것 같은데, 세월이 흘러 뒤돌아보면 물은 결국에 모든 것을 다 쓰러뜨리고 천하를 평정하고 만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은 자기 고집을 내세우지 않는다. 물은 그릇이 둥그러면 둥그런데 따르고, 그릇이 네모지면 네모진데 따른다. 자기는 각이 딱 서있는 네모진 것을 좋아하는데 왜 둥그런 그릇에 자기를 옮겨 붓느냐고 따지지 않는다. 네모진 그릇 속에 20년 동안 있다가도 둥그런 그릇을 만나면 어떤 불평도 없이 그 즉시로 둥근 것에 따른다. 또, 매끈한 그릇에 담겨 있다가 찌그러진 그릇에 옮겨 부어도 아무 불평 없이 즉시 그 찌그러진 형태에 따른다. 물은 어느 누구와도 싸우지 않으며, 항거하지 않으며,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는다. 물은 자기 앞의 생을 있는 그대로 100% 받아들인다. 물은 세상이 자기에게 맞지 않다고 거부하지 않는다. 물은 어떤 형태의 그릇이 됐건 그릇을 앞에 두고 고민하거나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며, 어떤 선택이나 조작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요컨대, 물은 무위 그 자체이다.
또한 물은 높은 곳을 향해 오르려 하지 않고 낮은 곳을 향 아래로 흐른다. 약한 듯, 힘이 없는 듯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 흐르면서 결국에는 모든 강하고 굳센 것을 기초에서부터 무너뜨린다. 이것이 물의 힘이다. 어떤 것도 이것을 대신할 것은 없다.
다. 입방정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는 것,
세상 사람들 다 알고 있으나
실천하지는 못한다.
물의 덕을 머리로 이해하기는 쉽지만, 몸으로 체득하기는 어렵다. 긴 안목으로 인생 전체를 내다보 수 있는 현인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화려하지도 않고 돋보이지도 않는 물의 행동양식을 삶의 전 영역에서 실천하며 살 수 있겠는가. 이것이 우리 범인들의 한계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잘 해놓고도 전체를 통찰하는 힘이 모잘라 꼭 끝에 가서 입으로 그 공을 깨고 만다. 그 공이 완벽해지기 위해서는 끝까지 입을 다물어야 되는데, 한순간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값싼 충동을 못이겨 입방정을 떨고 마는 것이다.
라. 정언약반(正言若反)
그러므로 성인의 말씀에 이르기를
온 나라의 치욕을 끌어안는 것을
사직의 주인이라 하고,
온 나라의 불행을 끌어안는 것을
천하의 왕이라 하였나니,
바른 말은 마치 진실에 반대되는 것 같구나.
그 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장차 리더가 되려고 하는 자들의 머릿속에 자신들이 몸을 낮춰 온 나라의 치욕과 수치를 끌어안으려는 생각이 들어있어야 한다. 헌데, 요즘 대한민국 꼴은 어떤가? 총리 후보다 장관 후보다 해서 청문회에 나온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대체 이들이 나라의 치욕을 온몸으로 끌어안으려는 자들인지 아니면 나라에다 치욕을 안기려는 자들인지 참 알 수가 없다. 그들은 대체로 나라의 어려움과 불상사는 일반 서민의 몫으로 돌리고, 나라의 행운과 복락은 자기들이 취하는 몫으로 오래전부터 생각해오고 행동해온 사람들처럼 보인다.
노자는 절반만 진실을 말해야 하는데, 너무 진실을 통째로 다 말해버리는 바람에 세상 사람들의 눈에 진실과 반대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이른바 '정언약반(正言若反 : 바른 말은 진리에 어긋난 것처럼 보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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