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소크라테스 선생님, 왜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을까요?

물질을 좇는 사람들에게 즐겁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바로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하지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일 겁니다. 행복은 단순히 즐거움의 단계가 아닙니다. '선'의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철학이 영원히 자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타인에 집중하고 자신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저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야말로 세계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의 기초를 다지려면 자신의 사고 능력을 확실히 인식해야 합니다. 자기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가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이성입니다.

 

2강. 플라톤 선생님, 결혼은 꼭 해야 하나요?

 

3강. 칸트 선생님, 양심에 따른 행동은 어떤 건가요?

문제의 관점은 무엇을 인식하느냐가 아니라 지식을 인식한 주체가 누구냐에 있습니다. 즉 무엇을 알고 있는지가 아닌, 무엇을 알 수 있는지를 물어봐야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 주체의 조건이 그가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경험 이전에 '선험'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경험 전 이미 인식이 있다는 겁니다. 인식은 경험과 주체의 선험 조건이 보태어진 종합적인 산물이지요.

따라서 인간의 인식능력에 대해서 우리는 그 지식을 인식하는 주체의 능력과 조건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성과 경험을 가지고 독단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거지요. 간혹 저도 인식이 물자체의 표상일 뿐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표상의 배후에 있는 본질은 신비로운 불확실성으로 넘쳐납니다. 인간의 인식은 어느 정도로 국한되어 있고요. 그렇다고 해서 형이상학을 지식의 범주에서 빼고 세계를 탐구한다면 우리는 아마 그 어떠한 결론도 도출해내지 못할 겁니다. 그저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는 거지요.

모든 사물의 발생은 인과법칙을 따릅니다. 이런 법칙은 인간의 마음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사물도 마음의 '형상'에 순응합니다.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것은 사물을 관찰하고 경험을얻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인식 원리를 물체에 적용하기 때문인데요. 이게 바로 선험주의의 인식 원리입니다. '관찰' 후 재정립한 질서 속에서 경험이 시작되는 겁니다. 이것이 인식론에 대한 저의 주요 관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고유한 도덕적 관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혜, 즉 '실천이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도모하기 전에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도 그런 행동을 하는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마음속 도덕법칙에 따라 행동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정언 명령의 의미는 모든 사람을 존중한다는 뜻이지, 상대방을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진정한 도덕 행위란 자신의 순수한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한 행동입니다. 자신의 선의지(양심)에 따라 의무적으로 행동하는 자율이 바로 도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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