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명상이란 무엇인가? 육신을 저버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단식이나 호흡 조절은 또한 무엇인가? 그것은 모두 자기로부터의 도피이고 존재의 고통으로부터의 순간적인 이탈이며, 생의 고통과 무의미에 대한 순간적인 마비일 뿐일세. 그런 도피, 그와 같은 순간적인 마비라면 술집에서 몇 사발의 탁주를 마시는 소몰이꾼들도 터득할 수 있다네. 그런 순간에는 소몰이꾼도 자아를 넘어서는 것일세. 그도 삶의 고통을 잊고 잠시 동안의 도취를 발견하는 것일세. 그는 탁주 사발 위에서 이 싯다르타와 고빈다가 오랜 세월을 두고 수련을 쌓아 육신에서 벗어나고 무아에 잠기는 그런 경지에 있는 것일세. 사실은 그러하네, 고빈다!"
"그는 이미 나이 60이 되었는데도 아직 열반에 이르지 못했네. 그러니 그분은 앞으로 그런 대로 70이 되고 80이 될 것일세. 그리고 자네나 나도 결국은 그처럼 늙어갈 것이며, 그때까지 수업을 계속할 것이고 단식도 명상도 계속할 것이네. 그래도 우리는 열반에 이르지는 못할거야. 스승도 우리도 그건 마찬가지일거야. 오, 고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어느 사문도 열반에 이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확신하네. 우리는 위안을 얻고 도취를 얻을 수 있으며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 기만의 기술은 터득할 수가 있겠지만, 궁극의 것, 도(道) 중의 도는 결코 찾아내지 못할 것이네."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으나, 고빈다, 나는 한 마디의 교훈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 셈일세. 인간은 결국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고 하는 이 한마디 말, 요컨대 '배움'이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세. 오, 친구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의 지식뿐일세. 그것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며 그게 바로 아트만이네. 그것은 나의 내부에, 자네의 내부에, 그리고 모든 존재의 내부에 있는 것일세. 그리하여 이제 나는 이렇게 믿게 되었다네. 이 지식에 대한 가장 큰 적은 알고자 하는 소망, 배우는 것 바로 그것이라고."
고타마(Gotama,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라는 뜻)
"세존께서는 자신의 구도에 의하여, 당신의 도정을 통하여, 사상과 명상을 통하여, 인식과 각성에 의하여 득도(得道)하신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결코 어떤 가르침을 통해 그것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오, 세존이시여! 이것이 저의 얕은 소견입니다만, 누구든 가르침에 의해 해탈이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그 어떤 사람에게도 세존의 말씀과 가르침에 의하여 세존께서 각성하시던 그 순간에 일어났던 것을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습니다. 불타의 빛나는 가르침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올바로 살고 악을 피하라고 가르치십니다.그러나 그토록 명백하고도 외경스러운 가르침 속에는 단 한가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세존께서 직접 체득하신, 수십만 명 가운데서 오직 세존께서만 체득할 수 있었던 것의 그 비밀이 빠져 있습니다.바로 이 점이 세존의 가르침을 들으며 제가 생각하고 깨달은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의 편력(遍歷)을 계속하도록 합니다 -- 다른 어떤 분의 보다 훌륭한 가르침을 찾아서 편력을 계속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 이 이상 더한 가르침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며, 이 세상의 모든 가르침과 스승들로부터 떠나서 홀로 스스로의 목표에 이르든지, 그렇지 못하면 차라리 죽는 것이 제 길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이 하루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오, 세존이시여! 성스러운 분을 직접 우러러 본 이 순간을 어찌 잊겠습니까?"
[편력(遍歷) : 1. 이곳저곳을 널리 돌아다님. 2. 여러 가지 경험을 함 ]
불타의 눈길은 조용히 지면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헤아릴 수 없는 그 얼굴은 완전한 평정으로 밝게 빛났다.
이윽고 그 거룩한 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대의 생각이 잘못이 아니기를 바라오.그대가 그 목표에 이르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소. 그러나 대답해보시오. 그대는 가르침에 귀의한 나의 사문들, 나의 수많은 형제들의 무리를 보았소? 그대는 그 무리들이 가르침을 버리고 세속으로, 환락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더 좋으리라고 믿으시오?"
싯다르타는 그 말에 부르짖듯이 대답하였다.
"제가 그런 생각을 하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모두 가르침에 머물러 있기를, 그리고 모두가 자신들의 목표에 이르기를 바라옵니다. 제가 할 일은 타인들의 생활을 비판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할 일은 저 자신만을 위하여, 저 한사람을 위하여 판단하고 선택하야만 하는 일입니다. 오, 세존이시여! 우리 사문들은 자아로부터의 해탈을 구하고 있습니다. 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세존의 제자가 된다고 하면, 제 자아는 다만 겉으로만의 안정을 얻고 해탈함에 지나지 않아, 그 자아는 계속 살아남아서 더욱 그 크기가 커지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또한 세존의 가르치심, 제 복종, 세존에 대한 저의 사랑, 승단(僧壇)을 저의 자아로 만들까 두렵습니다."
서서히 걸음을 떼어 놓으며 그를 가득 채우는 그 느낌을 여러 가지로 되씹어보았다. 그는 마치 물 속으로 빠져들듯 그 느낌의 밑바닥, 그 느낌의 원인이 숨겨져 있는 밑바닥까지 깊이 침잠해 들어갔다. 원인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사고(思考)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만 하나의 느낌이 인식될 수 있으며, 그것이 소멸되는 일 없이 본질을 이루고, 그것들의 내부에 도사린 것을 밝게 밝히게 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아였다. 내가 배우고자 했던 것은 자아의 본질과 그 의의였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할 수가 없었으며, 단지 그것을 거짓으로 속여 거기에서 도피할 수가 있었을 뿐이다. 진실로 이 세상의 어느 것도 그 자아처럼 나의 생각을 앗아간 것은 없으며 내가 살고 있다는 것,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나를 구별시키는 것, 또한 내가 싯다르타라고 하는 이 수수께끼처럼 나의 정신을 앗아간 것은 없었다.
'내가 자신이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싯다르타라는 존재가 내게 낯설고 언제까지나 미지의 존재라는 것, 그것은 하나의 원인, 단 하나의 원인에서 연유된 것이다. 내가 자신에 대하여 두려워했고 항상 자신에게서 도피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트만을 추구하였으며 브라만을 원했고 자아를 부수고 그 껍질을 벗겼다. 미지의 심층으로부터 모든 껍질의 핵, 아트만, 생명, 신성, 그리고 궁극적인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렇게 하는 동안 나 자신이 내게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오, 이제 나는 내게서 싯다르타를 놓쳐버리지 않으리라! 더 이상 아트만이나 세상의 비애로 나의 사색과 생활을 시작하지 않으리라. 더 이상 그 파편 속에서 비밀을 캐내기 위하여 나를 죽이거나 부수지 않으리라. 요가 베다(요가파의 경전)나 아탈 베다(재난을 쫓고 저급한 쾌락을 얻기 위한 주문으로 엮어진 경전)로부터도 배우지 않을 것이며 고행자들로부터도 가르침을 받지 않으리라. 나 자신에게서 배우고 자신을 스승으로 삼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 싯다르타의 비밀을 알아내리라.'
나는 세계의 책과 나 자신의 본질의 책을 읽으려 했을 때 미리부터 자신이 추측했던 뜻만을 사랑하여 기호와 글자를 우습게 여기고 현상세계를 환상이라 이름 붙였으며, 나의 눈과 나의 혀를 우연하고 무가치한 현상이라 불렀다.
싯다르타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한 순간 그의 가슴은 얼어붙었다. 자신이 얼마나 고독한가를 깨달았을 때, 그는 자기의 심장이 가슴속에서 조그만 짐승이나 한 마리의 새나 토끼처럼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2부
싯타르타는 걸음을 걸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웠다. 그것은 세상이 변해서 그에게 매혹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관찰하고 구함이 없이, 어린아이처럼 솔직하게 바라다보면 세상은 아름다웠다.
그 모든 것이 항상 거기에 있었으나, 그는 그것을 보지 못했었다. 마음이 거기에 없었기 때문이다.
밖으로부터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안으로부터의 소리를 듣고 거기에 기꺼이 따르는 일, 그것이 좋은 것이며 필요한 것이다. 그 밖의 다른 것은 필요하지가 않다.
"만약 당신이 물 속에 돌을 던지면, 돌은 지체함이 없이 곧장 물밑으로 가라앉겠지요. 마찬가지로 싯다르타가 어떤 목표나 계획을 세우면 그렇게 되고 말지요. 싯다르타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단지 기다리고 생각하고 단식을 할뿐이오. 그는 물에 가라앉는 돌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심지어 몸을 움직이는 일조차 하지 않고도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을 헤쳐나가는 거지요. 이끌려가는 것이며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지요. 그는 그 목적에 위배되는 일은 한 가지도 마음속으로 들여놓지 않기 때문에 목적이 그를 끌어당기는 것이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싯다르타가 사문들에게서 배운 것이지요.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마술이라느니 마귀의 힘이라느니 하지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마귀란 없어요. 누구나 마술을 할 수 있고, 누구나 목표에 도달 할 수 있소. 생각하고 기다리고 단식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마찬가지지요."
"물론 나는 심심풀이로 여행을 하였소. 그 밖에 다른 목적이 있겠소? 나는 그곳 사람들과 그 지방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친절과 믿음을 맛보았으며, 그들의 우정을 알게 되었소. 친구여! 만일 당신이었다면 물건 사는 일이 틀렸다는 것을 알자마자 화를 내고 서둘러 돌아왔을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정말 시간과 돈을 허비하고 말았을 것이오. 그러나 나는 보람 있는 나날을 보냈으며 많은 것을 배웠고 즐거움을 맛보았소. 그리고 분노와 초조감으로 자신이나 남들을 해치는 일이 없었소. 만일 내가 다시 한 번 곡물을 사기 위해서나 다른 목적으로 그 마을에 가게 된다면,그 친절한 사람들은 나를친절하고 다정하게 맞아줄 것이며 지난 번에 내가 초조하고 조급하게 굴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오. 그러니 친구여, 책망하는일로 당신 스스로의 기분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하시오. 만약에 이 싯다르타가 당신에게 손해를 준다고 생각되는 날이있으면, 단 한 마디만 해주시오. 그러면 이 싯다르타는 나의 길을 갈 것이오. 그러나 그때까지는 서로 마음 편히 지내도록 합시다."
싯다르타에게 자기의 빵을 먹고 산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려 했던 상인의 시도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싯다르타는 카마스와미의 빵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빵을 먹고 사는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두 사람이 다같이 다른 사람의, 다시 말해 이 세상 모두의 빵을 먹고 사는 것이라고 싯다르타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그들과 생활을 함께 하며 그들에게서 배운다는 것은 그로서는 쉬운 일이었으나, 그는 자기와 그들 사이를 갈라놓는 그 무엇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사문의 정신이라고 자각하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이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때로는 짐승과 같이 세월을 보내는 것을 보고 그런 생활을 귀엽게도 경멸스럽게도 생각하였다. 그들이 돈 때문에, 하찮은 환각이나 명예 때문에 고통받고 괴로워하며 늙어가는 것을 보았다. 싯다르타의 눈에는 전혀 마음 상할 가치가 없어 보이는 것들이었는데도 그들은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것을 보았다. 사문들이었다면 빙그레 웃으며 넘겨버렸을 고통을 그들은 괴로워하고 한탄하였으며, 사문들이었다면 느끼지도 않았을 궁핍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아름다운 카말라에게로 되돌아 갔다. 그는 사랑의 기교를 배웠고, 거기에서 주는 것과 받는 것이 일치되도록 애썼으며,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그녀로부터 배우고 그녀에게 충고하기도 하고 그녀로부터 충고를 받기도 하였다. 그녀는 고빈다가 그를 이해했던 것 이상으로 그를 잘 이해했다. 그녀는 고빈다 이상으로 그와 흡사했다.
한 번은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은 나와 닮았소. 당신은 다른 많은 사람들과는 달라요. 당신은 카말라일 뿐 다른 무엇도 될 수가 없소. 당신의 내부에는 조용한 피난처가 있어서, 그 속으로 파고들어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나와 똑같은 점이오. 그런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가 않은데, 실은 누구나 다 그래야만 마땅하오."
"사람들이 누구나 다 현명한 것은 아니니까요" 하고 카말라는 대꾸했다.
"아니오." 싯다르타는 말했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오. 현명한 점에 있어서라면 카마스와미도 나와 같을 것이나 그의 내부에는 피난처가 없소. 그러나 이성은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피난처를 지닌 사람에게 있어요. 카말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람에 나부껴서 맴돌며 날다가 땅에 떨어지는 나뭇잎과 비슷하단 말이오. 그러나 비록 그 수는 적으나 별과 같은 사람이 있소. 그들은 확고한 궤도를 걷고 있어 아무리 강한 바람도 그들에게는 도달하지 못하는 법이오. 그들은 자신의 내부에 법칙과 궤도를 갖고 있소. 내가 알고 있는 수많은 사문들과 학자들 가운데에서 그런 의미로 완전한 인간은 단 한 사람뿐이었소. 나는 절대로 그 사람을 잊지 못할 것이오. 그분은 바로 고타마이며 세존이요, 그 교리의 고지자요. 수천 명의 제자들이 매일같이 그의 가르침을 듣고 그의 율법을 따르고 있지만, 모두가 자신 속에 가르침과 법칙을 지니고 있지 않아서 바람에 나부끼는 낙엽이란 말이오."
"사랑하는 친구여, 생각을 해보게나. 무릇 형태가 있는 세계는 무상하다네."
"자네는 재산을 잃었는가?"
"나는 재산을 잃었네. 어쩌면 재산이 나를 잃었는지도 모르지. 어떻게 되었든 재산은 나와 작별을 했네. 모든 형태의 수레바퀴는 빠르게 도는 법일세. 고빈다, 브라만인 싯다르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일찍이 사문이었던 싯다르타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부자였던 싯다르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고빈다, 무상한 것은 빨리 변하는 법일세. 그건 이미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그 놀라운 잠으로부터 깨어난 그 순간, '옴'으로 가득 채워진 영광의 순간에 그는 누구이든, 어떤 물건이든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모든 것을 사랑하고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사물에 대해 기쁨에 가득찬 사랑을 보내게 된 것, 자기가 지금까지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사랑할 수 없었다는 바로 그 점에 자신의 병이 있었던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 젊은 시절은 지나가고 머리는 반백이 되었으며 몸과 마음이 다같이 쇠잔해가는 지금,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고 어린시절로 되돌아가야 하다니. 그는 또 한 번 미소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그의 운명은 정말로 기이했다. 지금은 운명의 내리막길에 있다. 다시금 공허하게, 벌거벗은 채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자로서 이 세상에 서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슬프지 않았다. 슬프기는커녕 오히려 크게 웃고 싶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어리석고도 이상한 세상에 대하여 웃고 싶었다. "너는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라고 그는 자신에게 말하면서 웃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동안에 그의 시선은 강물 위로 향했다. 강물 역시 밑으로 밑으로 흘러갔다. 강물은 끝없이 흘러내리며 즐거운 듯이 노래를 불렀다. 그 강물이 마음에 들어 그는 강물을 향해 미소지었다. 이 강물이 바로 내가 빠져버리려던 그 강물인가? 그것은 몇백년 전의 일이었던가, 아니면 꿈을 꾸었던가?
이제야 싯다르타는 예감할 수가 있었다. 자기가 브라만으로서, 고행자로서 이 자아와 그토록 헛되어 싸웠건만 그것을 굴복시킬 수 없었던 까닭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나 많은 지식이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 또한 너무나 많은 성스러운 구절, 너무나 까다로운 제례의 법칙, 지나친 금욕, 너무나 지나친 행위와 노력, 그런 것들이 모두 방해가 되었었다. 그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서 가장 현명한 자였고 열성가였다. 그리고 언제나 한 걸음 앞선 자요, 지식이이요, 사상사였으며 언제나 사제나 현자였다. 그런 사제 의식, 그런 자만심, 그런 사상 속에 그의 자아는 숨어 있었다. 자아는 거기에서 굳건하게 뿌리를 박고 자라고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단식과 고행으로써 죽어려 했었다. 그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어떠한 스승도 가르침에 의해서 너를 해탈시킬 수는 없으리라'고 말해주던 은밀한 마음의 목소리가 옳았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그렇다, 그는 이 강으로부터 배우고 싶었다. 강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다. 이 강물과 그 비밀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많은 비밀을 알게 될 것이다.
물은 흐르고 또 흐르고 끊임없이 흐르지만 언제나 그곳에 존재했다. 물은 언제나 똑같은 존재이면서도 순간순간 새로운 존재였다.
그는 배우는 모든 일에 대해 기쁨을 느꼈다. 세월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나 바스데바가 그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강이 가르쳐주었다. 그는 강으로부터 끊이없이 배웠다. 특히 듣는 법을 배웠다. 평온한 마음으로 기대에 차서, 열려진 영혼으로, 열정도 욕망도 비판이나 자신의 의견도 없이 귀를 기울여 듣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렇다. 진실로 도(道)를 찾아내고자 하는 구도자라면 어떠한 가르침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미 찾아낸 자는 어떠한 가르침, 어떠한 길,어떠한 목표도 다 받아들일 수가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영원 속에 살며 신성한 것을 호흡하는 수천의 다른 구도자와 다를 바가 없다.
"당신은 아들이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스스로가 그 모든 잘못을 저질러 왔다고 생각하는거요? 또한 당신은 아들을 윤회의 수레바퀴로부터 보호할 수가 있다고 믿는건가요? 대체 어떤 방법으로? 가르침을 통해서인가요? 기도를 통해서? 경고를 통해서?
친구여, 그런 도정이 혹 어떤 이에게는 면제될 수가 있다고 믿으시오? 당신의 아들만은, 당신이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만은 고통이나 환멸을 덜어주려고 한다고 해서, 그런 도정에서 면제될 수 있다고 믿으시오? 하지만 당신이 아들을 위하여 수십 번 죽는다고 해도 그것으로 그 아이가 걷게 될 운명의 한 조각이라도 덜어주지는 못할 것이오."
장원 문 앞에서 이렇게 오래 서 있던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를 이곳까지 몰고 왔던 욕망이 어리석었다는 사실,그가 아들을 도울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아들에게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도망친 아들에 대한 사랑을 마치 하나의 상처처럼 가슴 깊이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 상처가 자신을 아프게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며, 그 상처는 아름답게 꽃을 피우고 광채를 발해야 된다는 사실도 함께 느꼈다.
그 상처가 이 시각까지 아직 꽃피우지 못하고 광채를 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를 슬프게 했다.
그들의 허영심, 그들의 소유욕, 그들의 유치함이 그렇게 우스꽝스럽지가 않고 오히려 이해할 수 있고 사랑스럽고 심지어는 존중할 만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어린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맹목적인 사랑, 외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어리석고 무지한 자랑, 젊고 허영심에 가득 찬 여자가 남자들의 눈을 끌기 위해 몸치장에 힘을 쏟는 노력 등, 비록 단순하고 어리석은 것이기는 하지만 무섭도록 강렬하며 힘차게 살아 나가려는 충동과 욕구가 이제는 어린아이들의 장난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것들 때문에 인류가 존재하는 것이며, 무한한 것을 이룩하고, 여행을 하고 전쟁을 하고 무한히 괴로워하고 참아나간다는 사실을 통찰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을 사랑할 수가 있었으며 그들의 온갖 번뇌와 행동 속에서 생명과 불멸과 브라만의 의식을 보았다. 그들의 맹목적인 성실성, 그 맹목적인 힘과 강인성 때문에 참으로 사랑스럽고 감탄할 만한 존재였다. 지자나 사상가에 비하여 그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단 한가지의 사소한 것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일체의 생명의 단일성에 대한 의식과 의식된 사상이었다. 심지어 싯다르타는 가끔 이러한 의심까지 품었다. 생명의 단일성에 대한 지식, 그 사상이 그처럼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일까? 혹시 그것 역시 사색하는 인간의 어린애 같은 장난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그 밖의 모든 면에서는 속인들도 현인과 동격이며 때로는 현인을 능가하기도 한다. 짐승들조차 어떤 경우에는 그 강인함과 단호한 행동에 있어서 인간을 능가하듯, 속인들이 현인을 능가하기도 하는 것이다.
싯다르타의 내부에서는 서서히, 아주 서서히 인식과 깨달음이 꽃피고 성숙해갔다. 도대체 지혜란 무엇인가, 오랜 탐구의 목표는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과 깨달음이었다. 그것은 생의 한가운데에서 그 어느 순간에도 단일의 개념을 생각하고 느끼고 호흡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이며 능력이며 은근한 비결,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이 그의 내부에서 서서히 꽃피기 시작했으며, 또한 바스데바의 동안에서 그에게로 반사되어 왔다. 조화와 세계의 영원한 완전성에 대한 인식, 미소, 그리고 단일성이.
"지나치게 찾다보면 오히려 발견하지 못하는 수가 있지요. 누구든 도를 구할 때에는 거기에만 눈을 팔다가 찾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수가 있지요. 구하고자 하는것만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아무것도 마음속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지요. 또한 어떤 목표가 있고 그 목표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지요. '구한다는 것'은 어떤 목표를 갖는 것이나, '발견한다는 것'은 어떤 것에 사로잡혀 있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이지요.(되고싶은것 vs 하고싶은것)
"그렇다네. 나는 어떤 사상도 지혜도 가져보았었네., 나는 가끔 한시간이나 때로는 하루 종일, 마치 사람이 가슴속에서 생명을 느끼듯 마음속에서 지혜를 느낀 적도 있네. 그것은 실로 여러 가지 사상이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자네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심히 어려운 일일세. 고빈다, 이런 것이 바로 내가 찾아낸 사상 중의 하나라고 할 수가 있네. 지혜라는 것은 전달할 수 없는 것이어서 현자가 그것을 전달하고자 해도 그 말은 바보의 말처럼 들린다는 사실일세."
"농담을 하는건가?"하고 고빈다는 물었다.
"농담이 아닐세. 나는 찾아낸 것을 말하는 것뿐이네. 지식은 전달 할 수 있으나 지혜는 그럴 수가 없네. 지혜는 찾아낼 수도 있고, 지혜롭게 살아가고, 지혜로 기적을 핼할 수도 있네. 그러나 그것은 입밖에 내어 말하고 남에게 가르칠 수는 없네. 이것은 내가 젊은시절부터 여러 차례 느꼈던 것이라네. 그 때문에 나는 어떤 스승도 따르지 못했다네. 나는 하나의 사상을 찾아냈네. 고빈다, 이렇게 말하면 자네는 또 농담이나 어리석은 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내가 찾아낸 지고의 사상일세. '모든 진리는 그 역(逆)도 역시 진리다'라고하는 사상일세. 말하자면 진리란 그것이 언제나 단면적일 때에만 표현될 수 있고 말로 나타낼 수가 있다는 것일세. 어떤 사상으로 사고되고 언어로 표현되어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단면적일세. 모두가 단면적이며 반쪽이고, 모두가 그 전체성이나 완벽이나 단일이 결여되어 있는 것일세. 그러므로 세존 고타마께서도 이 세계에 대하여 가르치면서 세계를 윤회와 열반, 의혹과 진실, 번뇌와 해탈로 나누어 놓으실 수밖에 없었던 것이네. 다른 방법은 없네.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밖의 다른 방법은 있을 수 없다네. 그러나 세계 그 자체, 우리들 주위와 우리들 내부에 있는 존재는 결코 단면적인 것이 아닐세. 어떠한 인간이나 어떠한 행위라도 완벽하게 윤회라든지 열반이라고 할 수는 없네. 또한 한 인간이 완벽하게 성스럽다거나 죄 속에 있는 것도 아닐세. 그렇게 보이는 까닭은 시간이란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우리들이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네. 시간이란 실재하는 것이 아닐세. 고빈다, 나는 그 점을 수없이 체험하였다네. 그리고 시간이란 것이 실재하지 않는다면 세계와 영원, 번뇌와 해탈, 선과 악 사이에 존재하는 듯이 보이는 '거리'도 역시 착각에 지나지 않는 것일세."
"그래서?" 고빈다는 불안한 듯이 물었다.
싯다르타는 말을 계속했다.
"친구여, 잘 들어보게나! 자네나 나나 다 죄인이지만 그 죄인이 언젠가는 범(梵)이 될 것일세. 언젠가는 열반에 이르고 성불하겠지. 그런데 그 '언젠가'가 미혹이며 하나의 비유에 불과하지 않은가! 죄인은 성불로 이르는 도상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 과정 속에 있는 것도 아닐세. 우리들의 사고로는 사물을 그런 방식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사실이 그렇네. 죄인 속에, 지금 이 시각에 이미 미래의 부처가 있는거야. 그의 미래는 이미 존재하고 있네. 그의 내부에 자네 자신의 내부에, 그리고 모든 중생 속에 현재 형성되어가고 있는 가능성의 부처, 숨겨져 있는 부처를 존중해야 하네. 친구 고빈다여! 이 세상은 불완전한 것도 아니며, 또한 완전한 것에 이르기 위해 서서히 가는 것도 아닐세. 그렇고말고. 세상은 순간순간이 완전한 것이며, 모든 죄과는 이미 그 자체 속에 자비를 지니고 있다네. 어린아이들은 자체 속에 이미 백발노옹을 지니고 있으며 젖먹이들은 이미 죽음을, 임종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영생을 지니고 있는 법일세. 다른 사람을 보고 자신의 길을 얼마만큼 걸어왔는가를 말할 수는 없네. 그런 일은 누구도 할 수가 없다네. 강도나 노름꾼 속에도 부처가 도사리고 있고 브라만 속에도 강도가 도사리고 있다네. 깊은 명상 속에는 시간을 지양하고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것, 현존하는 모든 것, 앞으로 존재할 모든 것을 같은 것으로 보는 가능성이 있다네. 그리하여 그때에는 일체가 선이며 완전이며 범일세. 때문에 무엇이든 존재하는 것은 좋은 것으로 생각되네. 내게는 죽음이 삶처럼, 죄악이 신성한 것처럼, 지혜가 어리석음처럼 보인다네. 일체는 그래야만 하며, 단지 필요한 것은 나의 동의(同意), 나의 욕구, 나의 이해일 뿐일세. 그리하여 내게는 무엇이든 좋은 것이어서 결코 해로울 수가 없다네. 나는 영혼과 육체로 깨달았다네. 내게는 죄악도 필요했고, 향락과 물질에 대한 욕구와 가장 수치스러운 절망까지도 필요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일세. 그리하여 나는 저항을 포기할 줄 알게 되고 속세를 사랑할 줄 알게 되었으며, 이 세계를 나의 공상의 세계나 희망의 세계와 비교함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세계로 놓아두고 그 세계를 사랑하며 기꺼이 그것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네. 고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체득한 사상의 한 가지일세."
여기에서 싯다르타는 몸을 굽혀 땅바닥에서 돌을 하나 집어들었다.
"이것은 하나의 돌일세. 이것은 어느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흙이 되어버릴 것일세. 그리고 그 흙에서 식물이나 동물, 혹은 인간이 자라날지도 모르네. 그전 같았으면 나는 이렇게 말했을 것일세. '이 돌은 단순한 돌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가치가 없다. 이 돌은 미망의 세계에 속한다. 그러나 이 돌은 어쩌면 변화의 윤회에 따라 인간도 되고 영혼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돌의 가치를 인정한다.' 옛날 같았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나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네. '이 돌은 돌이다. 이것은 동물이기도 하고 신이기도 하며 부처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이 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은 이 돌이 언젠가 이런저런 물건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마찬가지로 영원히 그러한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돌이며, 이것이 지금 내게 돌로 보인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이 돌을 사랑한다. 나는 돌의 무늬와 홈, 노랗고 회색인 돌의 색깔, 그 견고함, 그리고 두드리면 나는 그 울림, 표면의 건조함이나 습기에서 돌의 가치와 의의를 찾는다. 만져보면 기름 같은 돌도 있어, 그 하나하나가 독특하며 각기 '옴'을 기도드리고 있다. 어느 것이고 브라만인 동시에, 또한 돌이어서 기름기나 비누와 흡사하다. 바로 그점이 나의 마음에 들며 내게는 이상하게 여겨지고 숭배할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네. 더 이상 말하지는 않겠네. 말은 신비스러운 뜻을 잃게 되기 쉽기 때문일세. 무엇이든 말로 표현하면 그 뜻이 어느 정도 달라지고 약간은 잘못 받아들여지고 다소 어리석은 소리가 되는 법일세. 그렇지, 그것 역시 좋은 일이며 나의 마음에 썩 든다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보물이며 지혜가 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말처럼 들린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일세."
고빈다는 말없이 듣기만 하다가 잠시 후 망설이듯 물었다.
"왜 자네는 그것을 돌에 비유하는가?"
"별다른 이유는 없네. 아마 나는 이 돌이든 강이든, 우리들이 관찰하고 그것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두 사랑한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 고빈다, 나는 한개의 돌을 사랑할 수가 있네. 그리고 한 그루의 나무, 한 조각의 나무껍질도 사랑할 수가 있네. 그것들은 사물이며, 사람은 그것들을 사랑할 수가 있다네. 그러나 나의 언어라는 것은 사랑할 수가 없네. 그렇게 때문에 가르침이란 어떤 것이든 내게는 상관이 없다네. 그것은 딱딱함도 유연함도 없으며 색깔도 모서리도 없고 향기도 맛도 없다네. 단순한 말에 불과할 뿐이지. 평화를 찾아내려는 자네를 방해하는 것도 바로 그것일지 모르네. 너무나 많은 말들이 자네를 막는 것일세. 해탈이라든지 덕성이라든지, 혹은 윤회라든지 열반이라고 하는 것이 모두가 한 마디의 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지. 고빈다, 열반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네. 존재하는 것은 다만 열반이란 말뿐일세."
고빈다가 말했다.
"하지만 자네가 '사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도대체 실재적인가, 본질적인가? 그것은 혹시 미망의 착각이 아닐까? 그렇게 않으면 단순한 영상이며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자네가 말하는 돌, 나무, 강물, 그런 것들이 대체 실재하는 것일까?"
싯다르타는 말했다.
"그 점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네. 사물이 모두 그림자라면 나 역시 그림자일 것이고, 그림자가 아니라면 나 역시 그림자가 아닐세. 그들이 나와 같은 것임에는 틀림없네. 사물들이 모두 나와 동일하다는 것, 바로 그 때문에 나는 그것들이 그토록 사랑스럽고 소중하다네. 자네가 들으면 웃겠지만, 이것이 하나의 가르침일세. 오, 고빈다! 사랑이야말로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네. 세계를 통찰하고 세계를 해명하고 세계를 경멸하는 것, 그것이 위대한 사상가가 할 일이겠지. 그러나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일세. 세계를 경멸하지 않고 세계와 나를 미워하지 않으며, 세계와 자신과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과 존경심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일세."
고빈다는 말했다.
"그 점은 이해하겠네. 하지만 세존께서는 그 점을 착각이라고 말씀하셨다네.그분께서는 호의와 관용, 동정과 인내를 가르치셨으나 사랑은 가르치지 않으셨네. 사랑 때문에 우리들의 마음이 속세에 얽매이는 것을 금한 것일세."
"나도 알고 있네"하고 싯다르타는 말했다. 그의 미소는 황금빛으로 빛났다. "고빈다,그 점은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보게나. 지금 우리들은 사상의 덩굴 속에서 말다툼을 하고 있네. 사랑에 대한 나의 의견이 외견상으로는 고타마의 말씀과 모순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겠네. 바로 그 때문에 나는 말이란 것을 그다지 믿지 않네. 그 모순이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세. 그 점에 있어서 나의 견해와 고타마의 말씀이 일치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네. 그분이 어찌 사랑을 모르시겠는가? 인간 생활의 공허함과 그 무상함을 알고 계시며, 더욱이 중생을 그토록 사랑하셨기에 그들을 도와주고 가르치는 일에 그의 길고 괴로운 생애를 보내신 그분이 어찌 사랑을 모르시겠는가? 자네의 위대한 스승인 그분에게도 사물이 말보다 더 소중할 것이라고 생각하네. 그분의 설교보다 그분의 행위와 생활이 더 중요하며 그분의 사상보다 그분의 손짓이 더 중요하다네. 설교와 사상에서가 아니라 그분의 행위와 생활 속에서 나는 그분의 위대하심을 보는 것일세."
그는 그 모든 형상과 얼굴들이 수천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서로 돕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파괴하고 탄생하는 것을 보았다. 그 하나하나가 죽음의 의지였으며 격렬하고 괴로운 무상에 대한 고백이었으나, 어느 하나도 죽지는 않았다. 그 하나하나는 단지 그 형태만이 바뀌어 새롭게 태어나고 끊임없이 새로운 얼굴을 갖게 되었지만, 그 사이에는 시간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든 형태와 얼굴들은 쉬기도 하고 흐르기도 하고 생성되고 떠돌아다니며 서로 융합하여 강물처럼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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