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 1~40

독서 / / 2015. 2. 24. 22:06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제1조

자본의 수익률이 생산과 소득의 성장률을 넘어설 때 자본주의는 자의적이고 견딜 수 없는 불평등을 자동적으로 양산하게 된다.

둘 다 소수의 사회집단-리카도가 보기에는 지주들, 마르크스가 보기에는 산업자본가들-이 필연적으로 생산과 소득의 점점 더 많은 몫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리카도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토지 가격과 지대의 장기적인 변화였다.

그의 관심을 끈 것은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논리적 역설이었다. 일단 인구와 생산이 모두 꾸준히 늘어나기 시작하면 토지는 다른 상품들에 비해 점점 더 희소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토지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지주에게 내는 지대도 상승할 것이다. 이에 따라 지주들이 국민소득 가운데 갈수록 더 많은 몫을 차지하면서 나머지 인구에게 돌아갈 몫은 줄어들 것이고, 결국 사회적 균형에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리카도가 볼 때 논리적으로,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토지 임대소득에 대해 점점 더 많은 세금을 물리는 것이었다.
 이 암울한 예언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지대는 장기간에 걸쳐 분명 높은 수준에 머물렀지만, 국민소득 중 농업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농경지의 가치는 결국 필연적으로 다른 형태의 재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하락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수요와 공급의 상호작용이 어떤 상대적인 가격들의 극단적인 변화에 따라 부의 분배의 심각한 양극화가 지속될 가능성을 결코 배제하지 못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 마르크스의 주요 결론은 '무한 축적의 원리 principle of infinite accumulation'라고 일컬을 만한 것이다. 즉 자본은 계속 축적되면서 갈수록 소수의 손에 집중되는 움직일 수 없는 경향이 있으며, 그 과정에 아무런 자연적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파멸을 예언한 근거다. 자본의 수익률이 끊임없이 감소하거나(그래서 자본 축적의 엔진을 꺼뜨리고 자본가들 사이에 격렬한 투쟁을 부르거나) 국민소득 가운데 자본가의 몫이 무한히 증가해(그래서 조만간 노동자들이 단결해 폭동을 일으켜) 결국 자본주의는 최후를 맞는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안정된 사회경제적, 정치적 균형은 불가능하다.

앞선 연구자들처럼 마르크스도 지속적인 기술 진보와 꾸준한 생산성 향상이 이뤄질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했다. 기술 진보와 생산성 향상은 민간자본의 축적과 집중화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균형을 잡아주는 힘이다.

더욱이 그는 어떤 사회의 민간자본이 완전히 폐지된 경우 어떻게 그 사회를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별로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민간 자본이 폐지된 나라들이 수행했던 비극적인 전체주의 실험이 보여주듯이 실제로 그런 상황이 될 경우 이는 매우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

쿠즈네츠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사회집단이 성장으로부터 같은 수준의 혜택을 보며 정상 궤도에서 크게 벗어나는 경우는 없다.- 처음으로 철저한 통계 작업에 기초한 것.

국민소득에서 고소득층이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하려면 소득세 신고 자료도 필요하다.

벨 커브 bell curve. 산업화 초기 국면에서는 단지 소수만이 산업화가 가져다주는 새로운 부의 수혜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불평등이 커진다는 것이다. 또한 나중에 더 진전된 발전 단계에서는 전체 인구 중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나눠 가지면서 불평등은 자동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 황홀한 쿠즈네츠 곡선 이론은 많은 부분 잘못된 논거들로 이루어졌으며 그 실증적 토대는 극히 취약했다. 1914년에서 1945년 사이에 모든 부유한 국가에서 나타난 소득불평등의 급속한 감소는 무엇보다도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전쟁이 (특히 많은 재산을 가진 이들에게) 불러온 강력한 경제적, 정치적 충격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소득은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노동에서 나오는 소득(임금, 급여, 상여금, 비임금노동에 따른 수입, 법적으로 노동과 관련된 것으로 분류되는 다른 보수)과 자본에서 나오는 소득(임대료, 배당금, 이자, 이윤, 자본소득, 로열티, 그리고 정확한 법적 분류와 상관없이 단지 토지, 부동산, 금융상품, 산업설비 형태의 자본을 소유한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다른 소득)이 그것이다.

불평등은 그 자체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그 불평등이 정당화 될 수 있는가, 그 불평등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이다.

첫번째 결론은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관한 어떤 경제적 결정론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의 분배의 역사는 언제나 매우 정치적인 것이었으며, 순전히 경제적인 메커니즘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두번째 결론은, 부의 분배의 동학이 수렴과 양극화가 번갈아 나타나도록 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을 가동시킨다는 것, 그리고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힘이 지속적으로 승리하는 것을 막는 자연적이고 자생적인 과정은 없다는 것이다.

양극화의 근본 요인 : r>g
r은 연평균 자본수익률, g는 경제성장률

19세기 이전의 역사에서 대부분 그랬고 21세기에 다시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듯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크게 웃돌 때는, 논리적으로 상속재산이 생산이나 소득보다 더 빠르게 늘어난다고 할 수 있다. 물려받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은 자본에서 얻는 소득의 일부만 저축해도 전체 경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본을 늘릴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상속재산이 노동으로 평생 동안 쌓은 부를 압도할 것이고 자본의 집중도는 극히 높은 수준에 이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수준의 집중도는 능력주의의 가치, 그리고 현대 민주사회의 근본이 되는 사회정의의 원칙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 내 이론에서 양극화의 주된 요인인 r>g라는 기본적인 부등식은 시장의 불완전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사실 그 반대다. (경제학자들의 개념상) 자본시장이 더 완전할수록 r이 g보다 커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 확고한 논리의 효과를 상쇄시킬 수 있는 공공정책이나 제도를 상정해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를 물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제도나 정책들을 확립하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국제 협력을 요구한다. 안타깝게도 이 문제에 대한 - 개별 국가 차원의 다양한 대응을 포함한 - 실제 대응은 현실적으로 훨씬 더 미온적이고 효과가 적을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혁명은 정의롭거나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적어도 부의 구조를 전례 없이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1790년대에 토지, 건물, 금융자산을 기록하기 위해 확립한 체계는 당시로서는 깜짝 놀랄 만큼 형대적이고 포괄적인 것이었다. 혁명 때문에 프랑스는 오랫동안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재산 기록을 갖게 되었다.

인구의 자릿수가 달라지지 않았으므로

프랑스 사례는 프랑스혁명이 시장과 관련해 법적 평등의 이상을 신속하게 확립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혁명은 모든 법적 특권을 폐지했으며, 전적으로 권리와 기회의 평등에 바탕을 둔 정치, 사회질서를 만들어내려 했다. 민법은 (적어도 남성에게는) 계약의 자유뿐만 아니라 재산에 관한 법률 앞에서 절대적인 평등을 보장했다. 19세기 후반 피에르 폴 르루아볼리외 같은 프랑스의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은 흔히 이런 논리를 들어 대혁명으로 평등해진 '소액 자산보유자'의 국가인 프랑스는 귀족과 군주의 국가인 영국과 달리 누진적이거나 몰수와 다름없는 소득세나 상속세를 시행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료를 보면 당시 프랑스의 부의 집중도는 영국만큼 극단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시장에서의 권리의 평등이 진정한 권리의 평등을 보장해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나는 불평등이나 자본주의 자체를 비난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더구나 사회적 불평등은, 그것이 정당화되기만 한다면, 다시 말해 1789년 프랑스혁명 다시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제1조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적 차별이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두는'한, 그 자체로서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공정한 사회질서를 이루기 위한 가장 적절한 제도와 정책들

이처럼 수학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던지는 훨씬 더 복잡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내놓을 필요가 없이 과학성의 겉치레를 손쉽게 입힐 수 있는 방법이다.

사실 경제학은 결코 다른 사회과학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오려 하지 말았어야 했다.그리고 그들과 함께할 때에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소득과 부의 역사는 언제나 대단히 정치적이고, 혼란스러우며,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역사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사회가 불평등을 어떻게 보느냐에, 그리고 그것들을 측정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정책과 제도를 채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누구도 이런 것들이 앞으로 수십년간 어떻게 달라질지 미리 알 수는 없다.그러나 역사의 교훈은 유용하다. 그것들은 21세기에 우리가 어떤 선택에직면할지, 어떤 동학이 작동할지를 조금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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