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가야할 길

독서 / / 2019. 11. 26. 21:57

1 훈육


삶은 문제와 고통의 연속이다/

 

삶은 고해(苦海)다. 

 

이것이 위대한 진리인 까닭은 진정으로 이 진리를 깨닫게 되면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삶이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면, 즉 진정으로 그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삶은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된다. 일단 받아들이게 되면 삶이 힘들다는 사실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이 힘들다는 이 진리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대신에 드러내놓고 또는 은근히 자신이 지닌 어려움, 걱정, 문제가 엄청나다고 끊임없이 불평한다. 그들은 마치 삶은 기본적으로 편안한 것처럼, 다시 말해 삶은 응당 편안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문제에 부딪치면 용기와 지혜가 필요해진다. 사실은 이때에 용기와 지혜가 생겨난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오로지 문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바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는 고통을 통해서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현명하지 못하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우리들 거의 대부분은 당면한 문제를 두려워하면서 피하려 든다. 문제를 질질 끌면서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기를 바란다. 

 

"신경증(노이로제)이란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회피한 결과다." - 칼 융

 

어느 경우든지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정당한 고통을 피하려 하면 역시 문제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성장을 놓치게 된다. 

 

고통을 겪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으며, 문제에 직면하고 그에 따르는 고통을 겪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자. 

 

훈육이라는 이 도구는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것, 책임을 지는 것, 진리에 대한 헌신, 균형 잡기 이렇게 4가지가 있다. 

 

문제는 이 도구의 복잡함이 아니라 이를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이 도구들은 고통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통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사용하려는 의지 = 사랑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룰  있는가/

부모가 물려줄  있는 가장 값진 선물/

 

결국 사랑이 전부다.

 

사랑이 넘치는 부모는 아이의 욕구를 파악하고 그것을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서, 결정을 내릴 때 괴로워하고 말 그대로 아이와 고통을 함께한다. 아이들은 맹인이 아니다. 부모가 자기와 고통을 함께한다는 것을 알고 당장 고마움을 표시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아이들 역시 고통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된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기꺼이 나와 함께 고통을 받고 있으니 고통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닐 거야. 나도 기꺼이 괴로움을 견뎌야지"라고 스스로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자기 절제의 시작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바치는 시간의 질과 양이, 아이에게는 자신이 부모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근본적으로 사랑이 없는 부모는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서 아이에게 자주 사랑을 고백하고, 정말 친밀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하지도 않으면서 습관적이고 기계적으로 아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강조한다. 아이들은 결코 이러한 공허한 말에 속지 않는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느낌은 정신 건강에 필수적이며 자기 절제의 초석이다. 그것은 부모가 주는 사랑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이러한 믿음은 어린 시절에 획득해야만 한다. 성인이 돼서 그것을 얻기란 참으로 어렵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돌보게 된다. 자기 절제는 스스로 자신을 돌본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소중하게 여겨지면 시간을 소중하게 느끼게 되고 시간이 소중하게 생각되면 시간을 잘 이용하고 싶어진다. 

 

어떤 부모는 가능한 쉽고 빠르게 훈육하고 싶어서 노골적으로든 은근하게든 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부모가 아이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이러하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너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거야. 그게 무얼 말하는지 알겠지?"

물론 그것은 버림받음이고 죽음이다. 이러한 부모는 아이를 조정하고 지배할 필요 때문에 사랑을 희생한다. 그 대가로 아이들은 미래에 대해 지나친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아이들은 심리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버림받은 채, 세상은 안전하고 보호 받을 수 있는 장소라는 뿌리깊은 의식 없이 성인에 이른다. 그들은 반대로 세상을 위험하고 무서운 곳으로 인식하고 미래에 더 큰 즐거움이나 안전을 보장받는다 해도 현재의 어떤 즐거움이나 안전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미래는 참으로 미심쩍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즐거움을 나중으로 미루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아이들은 스스로 훈육할 줄 아는 역할 모델과 자기 존중감이 있어야하고 존재의 안전함을 신뢰해야 한다. 이러한 '자산들'은 부모의 자기 절제와 순수하고 일관된 보살핌을 통해서 획득된다. 이것이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다. 부모에게서 이러한 선물을 받지 못할 경우 다른 곳에서 획득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 그 획득 과정은 힘든 투쟁이 된다. 때에 따라서는 평생 걸릴 수도 있고 그나마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시간을  마음만 있다면 문제는 해결할  있다/

 

완벽하게 예리하고 분석적인 사고를 지닌 그녀는, 질질 끌지 않을 때는 직장에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유능했다. 그러나 개인적인 문제에 부딪치면 마치 분별력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개인적인 문제를 의식하게 되면 곧바로 아주 쩔쩔매면서 즉각적인 해결을 원했다.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 지체되는 시간 동안의 불편함을 견디려 하지 않았다.

 

사실 문제 해결에 있어 즉각적인 해결책을 찾느라 성급하게 아무 조치나 취하는 것보다 더 유치하고 파괴적인 결함이 있다. 그 결함은 더 보편적이고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문제란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부딪쳐서 해결하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영혼의 성장과 발전에 영원히 장애가 된다.

 

문제를 무시해버리는 태도는 즐거움을 뒤로 미루겠다는 의지가 없음을 말해준다. 이미 말했듯이 문제와 직면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오기 전에 자발적으로 문제와 직면한다는 것은, 더 고통스러운 것을 위하여 덜 고통스럽거나 즐거운 일을 제쳐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건  탓이 아닙니다/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기 전, 먼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야한다. "그것은 내 문제가 아니야"라고 말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대신해 문제 해결을 해주기를 바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신경증과 성격 장애/

 

기본적으로 누구든지 성실하게 치료를 받으면 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사는동안 책임져야 할 것과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을 분간하는 것이 실존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내가 결정하지 않은 선택에 대해서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완전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우리는 사는 동안 내내 끊임없이 새로운 사건들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계속해서 평가하고 재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제대로 양심적으로 이행한다면 이러한 평가와 재평가의 작업은 고통스럽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과정이든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자기 분석을 감당할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이나 의지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어떤 상실을 겪고 납득이 안 되면 본능적으로 그것을 책임지려 한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춘기 초에 아직 데이트나 스포츠에 능하지 못한 아이들은, 꽃피는 것이 그렇듯 좀 늦거나 평균적으로 정말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데도 스스로 심각하게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세상과 그 세상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얻으려면 많은 경험을 쌓고 오랜 시간 동안 제대로 성장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 자신과 세상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실질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한편 성격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자식을 망치는 부모가 된다. 그들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그들이 자식을 다루는 방식은 지독하게 파괴적이다. '신경증 환자들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성격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성격장애를 가진 부모가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사람은 바로 그들의 아이들이다. 다른 상황에서도 그렇듯이 그들은 부모노릇 하는 데에도 적절한 책임을 지지 못한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관심을 주기보다는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아이들을 밀쳐낸다. 자기 아이가 학교에서 비행을 저지르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성격 장애가 있는 부모들은 곧바로 학교 시스템을 탓하거나 다른 아이들을 탓하면서 그 아이들이 자기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태도를 지닌 사람들은 당연히 문제를 무시한다. 책임을 회피해버림으로써 성격 장애 부모들은 자기 아이에게 은연중에 무책임한 태도를 가르치게 된다. 결국 삶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고 함으로써 그 책임을 아이들에게 부과하는 경우도 생긴다. 

 

아이들은 이것이 얼마나 부당한지를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므로 대체로 이런 책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아이들은 신경증 환자가 된다. 바로 이런 식으로 성격 장애를 가진 부모는 거의 틀림없이 성격 장애나 신경증이 있는 아이들을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죄를 덮어씌운 것은 바로 부모 자신이다. 

 

"당신이 해결에 참여하지 않으면 당신은 문제의 일부가 되고 말 것이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원하면 그들처럼 지낼 수 있는 완벽한 선택의 자유가 있는데, 그들이 나와 다른 스타일을 선택했다고 그들에게 화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화내는 것은 그들과 다르게 지내고자 한 내 선택에 화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우리 행동에 책임지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그 행동의 결과로 따라오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는 데서 비롯한다. 

 

책임이 주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매일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한다. 

 

어른으로서 건강한 신체를 가졌다면 우리의 선택은 거의 무한하다. 선택이 고통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빈번히 두 가지 나쁜 것 중에서 덜 나쁜 것을 선택해야 하지만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 나는 친구의 말에 동의한다. 세상에는 진정 억압적인 세력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매 순간 이러한 세력들에 대응하고 대처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자유를 사랑하며 자유를 방해하는 억압적인 세력에 대해 말하지만 자신이 어떠허게 이러한 세력의 희생자가 되는지를 말할 때마다 그는 사실 자신의 자유를 버리는 셈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환자들은 '똑같은 문제, 즉 무력감, 다시 말해 상황을 대처하고 바꿀 수 없다는 두려움과 심적 믿음이라는 똑같은 문제'를 갖고 심리 치료사를 찾아온다고 말한다. 대다수의 환자들이 겪는 이러한 '무력감'의 뿌리에는 자유의 고통에서 부분적으로나 완전히 도피하고 싶은 욕망과 부분적으로나 완전히 자신의 문제와 삶에 책임지지 못하는 패배감이 깔려 있다. 사실 자신의 권한을 버렸기 때문에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다. 언제가 됐든 치유가 되려면, 그들은 성인의 삶이란 온통 개인적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완전히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면 자유로워진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들은 영원히 자신을 희생자라고 느낄 것이다. - <심리요법 학습> 힐드 브러치

 

 

 

현실을 바로 보고 바로 인식하는 /

 

상대적으로 운이 좋은 몇 사람만이 죽는 순간까지 삶의 비밀을 탐구한다. 그들은 계속해서 세상과 진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이를 수정하고 다시 정의를 내린다.

지도를 만드는 데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무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정확한 지도를 위해 계속해서 지도를 고쳐야한다는 사실이다. 

 

 

 

전이: 낡은 지도 옮겨오기/

 

전이 : 세상을 바라보고 대응하는 일련의 방식들이 어릴 때 형성되는데, 이것이 어린 시절의 환경에는(진정 생명을 구할 정도로) 아주 적절하지만 어른의 환경에는 부적절하게 옮겨오는 것을 만한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의 관심 부족 때문에 고통스러운 실망을 거듭 겪었던 것이다. 점차적이었는지 갑자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청소년 시절의 어느 날 그는 더 이상 부모를 믿을 수 없음을 깨닫고 괴로웠다. 그런데 이것을 알게 되면서 기분이 나아졌고 삶은 더 편안해졌다. 더 이상 부모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고, 혹은 부모의 약속에 희망도 품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부모를 믿지 않게 되자 그가 자주 겪었던 극심한 실망은 신기하게도 줄어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적응은 장차 문제의 소지가 된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는 이 세상 전부다. 부모가 곧 세상이다. 어린아이에게는 다른 부모는 다르고, 흔히 더 낫다는 것을 알아볼 안목이 없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일처리 방식이 바로 세상 일이 처리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체득한 '현실'에 대한 인식은 "나는 우리 부모를 믿을 수 없어"가 아니라 "나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청소년기와 성인기에 다다랐을 때 지니게 된 지도는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지도에, 많은 실망을 경험한 데서 비롯된 분노가 마음 가득 쌓인 그가, 권위를 지닌 사람들 즉 경찰, 선생, 고용주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이러한 마찰로 인해 세상에서 그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이 더욱더 굳어졌다. 지도를 수정할 기회는 많았으나 그는 모두 지나쳐버렸다. 먼저, 성인 세계에 믿을 만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배울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믿는 모험을 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다음, 이러한 재학습을 위해서 부모에 대한 견해를 수정해야 한다. 즉,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정상적인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으며, 보통의 다른 부모와 달리 그의 부모는 자기 요구에 냉담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깨달음은 지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결국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 어린 시절에는 적절한 적응 방법이었던 것은, 그것이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아주 잘 써먹고 있는 적응법을 포기하기란 지극히 힘든 일이므로 그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믿지 않았고 무의식중에 그런 불신을 확인시켜주는 상황을 만들었으며 모든 사람과 자신을 격리시킴으로써 스스로 사랑, 따스함, 친밀함, 다정함을 누릴 수 없도록 만들었다. 

 

진실이나 현실이 고통스러울 때 사람들은 이를 피하게 마련이다. 그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절제력이 있을 때만이 지도를 수정할 수 있다. 이러한 절제력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진실에 전적으로 충실해야 한다. 이 말은 진실이 우리의 편안함보다는 이익을 위해 더 중요하고 절대적임을 믿어야 한다는 의미다. 역으로 표현하면 항상 개인적 불편함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여겨야 하며,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는 진정으로 심지어 그것을 반겨야 한다. 정신 건강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진실에 충실하는 진행형의 과정이다. 

 

 

 

과감한 도전: 자기 성찰의 /

 

현명하게 산다는 것은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위험의 근원이 우리 안에 있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며,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부단한 자기 성찰과 사색의 과정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기를 성찰한다는 것은 지극히 고통스러운 삶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이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를 피해 가려고 한다. 

 

또한 진실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생활이란 자진해서 다가오는 변호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생활을 말한다. 우리가 가진 현실에 대한 지도가 정말 유효한지 확인해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지도 제작자들의 비판과 도전을 받을 수 있게 자기 지도를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꽉 막힌 세계 안에서 살게 된다.

 

도전에 개방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올 때 비로소 정신 치료는 완전해진다. 

 

진실에 헌신하는 생활의 세번째 의미는 정직한 생활이다. 

 

그러한 정직은 고통 없이 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도전과 그에 따르는 고통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도전에 맞닥뜨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앞세우는 것은 당연히 겪어야 할 고통을 우회해보려는 시도로, 결국 그것의 부산물은 정신 질환이다. 

 

대체로 인간은 정당하지 못한 지름길을 찾아내려는 경향만큼 정당한 지름길을 묵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나는 자주 심리 치료를 가리켜 '진실 제임' 또는 '정직 게임'이라고 말한다. 심리치료는 무엇보다도 거짓말과 대면하도록 환자를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신병의 근본적인 원인 중의 하나는 내가 들어온 거짓말과 자신에게 해온 그런 거짓말이 서로 엉키는 것이다. 이런 원인은 오로지 철저히 정직한 분위기에서만 뿌리째 뽑아버릴 수 있다.

 

 

 

진실을 숨기는 행위는 거짓말과 같다/

 

거짓말을 한 것만큼이나 치료의 진전을 방해한 셈이다. 

 

개방적인 사람들은 그들의 지도를 계속 도전받게 함으로써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정직하려는 자기 훈육에 필요한 에너지가 비밀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보다 훨씬 적게 든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정직하면 할수록 계속 정직하기가 쉽고,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더욱더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진실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개방성 덕에 개방된 삶을 살고, 개방적으로 사는 용기를 발휘함으로써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진다.

 

 

 

균형 잡기/

 

용감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철저히 정직하려고 애쓰고, 그러는 한편 필요할 때는 진실을 모두 밝히지 않는 능력도 가져야만 한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동시에 진실로 우리 책임이 아닌 것은 거절할 줄 아는 능력을 소유해야 한다. 정돈이 잘 되고 효율적인, 현명한 삶을 위해서는 그날그날의 즐거움을 뒤로 미루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기쁘게 살려면 파괴적이지 않은 한도 내에서 현재에 살고 즉흥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복잡한 세계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가려면 분노를 표현할 줄 아는 능력뿐만 아니라 표출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도 소유해야 한다. 더 나아가 여러 다른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할 줄 아는 능력을 소유해야만 할 것이다. 

 

화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정교하고 유연한 대응 방식이 필요하다. 화 다루기를 배우는 것은 단순하지 않아서 대개의 경우 어른이 된 뒤에나, 심지어는 중년이 지나야 가능하기도 하며 때로는 죽을 때까지 배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훈육이다. 정확히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은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커브 길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대신 그 황홀한 속력을 포기하는 고통을 겪을 마음이 내게는 없었다. 그때 나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고통보다 균형을 잃는 것이 궁극적으로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배웠다. 어쨌든 이것은 일생 동안 계속 배워야 했던 삶의 교훈이 되었다. 누구든지 삶의 여러 가지 구부러진 길과 모퉁이와 타협할 때는 계속해서 자신의 일부를 포기해야만 한다. 이러한 포기 대신 유일한 선택이 있다면 그것은 인생이라는 여행을 아예 그만두는 일이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우울증/

 

사랑한 어떤 것을 포기하는 데 따르는 감정, 적어도 내 일부분이고 나와 친근한 것을 포기하는 데 따르는 감정이 바로 우울이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인간은 당연히 성장해야 하고, 정신적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옛 자아를 포기하거나 상실하는 것이 필수 과정이므로 우울증은 정상적이고 근본적으로 건강한 현상이다. 그런데 포기 과정에 무언가가 간섭할 때면 비정상적이 되거나 건강을 해치게 되고, 그 결과 우울증은 길어지고 포기가 완수되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부모나 운명이 아이의 요구 사항을 채워주지 않고, 아이가 심리적으로 포기할 준비가 되기도 전에, 또는 욕구를 포기해도 정말 괜찮다고 용납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지기 전에, 가진 것들을 빼앗아버리는 식의 패턴이 그러하다. 이런 식의 어린 시절 경험은 아이가 잃는 경험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더 운 좋은 사람들보다 더 강하게 '소유물'에 매달리고 잃어버리거나 포기하는 고통을 회피하게 하는 습관을 만든다.) 

사람들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주요 이유가 바로 우울증이다. 다시 말하면, 환자들은 흔히 심리 치료를 받겠다고 결심하기 전에 이미 포기라는 성장 과정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들을 치료실로 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성장 과정에 동반되는 증상이다. 그러므로 치료사의 역할은 환자가 이미 시작한 성장 과정을 완수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것은 환자가 자신에게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 반대로 환자는 단지 우울증 증세에서 벗어나기만을 원하며, '그래서 모든 일이 이전처럼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은 모든 일 이제 더 이상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나 무의식은 알고 있다. 정확히 이 무의식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은 더 이상 유지하거나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의식의 수준에서 성장하고 포기하는 과정이 작용하기 시작해 우울증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와는 달리 환자는 "나는 왜 내가 우울한지 모르겠다"라고 하거나, 당치도 않은 원인에다 우울증을 갖다 붙일 것이다. 아직 환자의 의식 수준은 '옛 자아'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이 낡은 것이 되었다는 것을 인식할 의사가 없거나 인식할 준비가 안 돼 있으므로, 성공적인 적응과 발전을 위해 중요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울증이 알려주고 있음을 모른다. 

 

인생의 여정에서 이러한 전환기적 위기(그것은 문제투성이고 고통스럽다)를 맞게 되는 이유는, 그것을 성공적으로 넘기 위해선 예전에 소중히 여기던 생각과 이제껏 써온 방법, 사물을 보아온 방식들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버릴 필요가 있는 부적합한 것을 포기하는 고통을 감당할 마음도 없거니와 또 감당해낼 수도 없는 형편이다.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써  많이 얻는다

 

삶에 모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죽음이다. 

 

성숙한 깨달음이란 개인적 경험의 잔재인 선입견과 편견을 이해하고 보완할 때만 가능해진다. 

익숙한 것을 억제하고 낯선 것을 환영하는 것이다.

어느 자료든지 그것의 고유한 성격을 이해하고 인정하고자 한다면 나의 선입견과 왜곡된 감정의 특징들을 제대로 파악하여 괄호로 묶어놓고 내 인식 세계에 새롭고 신기한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처럼 괄호로 묶어놓거나, 보완하거나 억제하는 훈육에는 고도의 자기 인식과 용감한 정직함이 필요하다. 이러한 훈육 없는 현재의 순간이란 이미 보았거나 경험한 어떤 것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 새로운 것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즉 사물이나 사람이나 사건의 고유한 성격이 내 안에 뿌리박게 하기 위해서는 자아의 탈중심화를 겪어야만 한다. - <춤추는 신, 샘 킨>

 

가장 결정을 잘하는 사람이란, 자기 결정에 따르는 최대한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할 용의도 있으면서 여전히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훈육이란 문제 해결의 고통을 피하는 대신, 문제 해결의 고통을 건설적으로 취급하는 기술 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2
 사랑
사랑이란 무엇인가/‘사랑 빠진다는 /낭만적인 사랑이라는 신화/사랑은 자아 영역을 확대하는 /의존성을 경계하라/사랑이 없는 애착/사랑은 자기 희생이 아니다/사랑은 느낌이 아니다/관심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 사랑/사랑이라는 모험: 상실/사랑이라는 모험: 독립/사랑이라는 모험: 헌신/사랑이라는 모험: 충고/사랑은 훈육되는 /사랑은 분리다/사랑은 정신 치료다/사랑이라는 미스터리

3
 성장과 종교
서로 다른 우주의 세계관, 그리고 종교/과학은 회의의 종교다/캐시의 경우/마르시아의 경우/테오도르의 경우/아기와 목욕물/과학이라는 터널 속에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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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총
건강의 기적/무의식의 기적/우연한 깨달음이라는 기적/은총이란 무엇인가/진화의 기적/알파와 오메가/엔트로피, 게으름 그리고 원죄/악이란 무엇인가/의식의 진화/권력이란 무엇인가/은총과 정신 질환: 오레스테스의 신화/은총에 저항하는 사람들/은총을 맞이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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