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의 대상은 '기억' 그 자체가 아니라 '기억의 재생방식'입니다.
1부. 호오포노포노 이해하기
호오포노포노 실천편을 시작하며
정화는 그저 이것을 맑게 만들어서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뿐이지 일의 방향을 내 뜻대로 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호오포노포노는 그렇게 무언가를 더 낫게 만드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것뿐입니다.
나의 의도와 계획이 들어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고 맑은 상태로 삶이 흘러가도록 하는 것.
한지붕 세가족
의식(우하네) : 바깥세상을 본다
무의식(우니히필리) : 데이터를 관리한다.
신성(아마쿠아) : 미래와 집단의 움직임을 살핀다.
정화의 대상은 이러한 작업기억(기억처리 패턴)입니다. 기억 그 자체는 정화의 대상이 아닙니다.
2부. 호오포노포노 경험하기
데이터의 재생
우하네가 망상에 빠질때
우하네가 현실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불안회로를 끄기 위해서 스스로 망상 속에 들어가서 불안의 이유를 찾고 해결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외부와 상호작용하는 우하네가 망상 속으로 들어가면 우하네의 일을 우니히필리가 대신하게 됩니다. 마치 자동차를 운전하던 우하네가 한 눈을 파는 사이 우니히필리가 운전대를 잡은 것과 같습니다. 꽤나 위험한 일이 되겠지요.
이제 외부세계를 볼 수 없는 우니히필리는 지금까지 우하네를 통해 봐왔던 내용들 중에 자신이 갖고 있는 기억과 가장 유사한 것을 찾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나에게 화를 냈을 때, 역반하장으로 내가 큰소리를 쳤더니 친구가 멋쩍어하면서 상황이 해결되었던 기억을 찾아냅니다. 그 기억을 재생하여 연인에게 오히려 화를 버럭 냅니다.
이것이 바로 우니히필리가 행하는 데이터의 재생입니다. 그 결과로 연인의 화가 풀릴지, 풀리지 않을지는 모릅니다.
어느 쪽이건 상관없습니다. 우니히필리는 연인의 화가 풀렸다면 그것으로 '이 데이터는 역시 잘 통하는 데이터야. 잘 저장해 놓고 나중에 또 써야지'라고 여길 것이며, 풀리지 않았다면 '어쩌지? 그럼 다른 데이터는 없나?' 하면서 또 다른 데이터를 재생할 것입니다. 어느 쪽이건 문제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될 수 없겠지요.
정화는 문제 해결책이 아니다
정화의 참된 목적은 내가 만나는 모든 일이 나로 인해 묶이지 않고 순리대로 흐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바람직한 정화의 모습
정화 자체가 문제를 해결하거나 바라는 것을 이루는 수단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화를 하면 어떤 식으로든 문제가 해결되기도 합니다. 단 내가 기대하는 방향이 아닐 수는 있지요. 이것은 정화의 결과로 인해 인도되는 최적 상태가 지금 내가 예측하는 수준에서의 최적 상태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정화는 바로 현재의식인 우하네가 무언가 하려는 것을 놓는, 무언가하지 않으려는 것을 놓는, 잘 되는 일을 놓는, 잘 되지 않는 것을 놓는 행위 그 자체인 것입니다.
정화의 대상
정화의 대상은 '기억 그 자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정화해야 하는 것은 데이터 그 자체가 아니라 '기억이 재생되는 방식'입니다.
'ㅇㅇㅇ가 되도록 하는 내 데이터의 재생방식에 대한 집착을 정화합니다'라는 표현을 써야 더 정확합니다.
제로상태와 정화
다음 세 가지에 대해서 정화를 하게 됩니다.
1.사실 아님
2.메타프레임
3.내부표상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사실'과 '사실 아님'의 구분입니다. 그리고 이 중에서 정화의 대상은 '사실 아님'입니다.
정화를 하려면 무엇보다 일차적으로 사실과 사실 아님을 구분해야 합니다. 당연히 연인의 이별통보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외의 것, 불안, 좌절, 분노, 슬픔, 손발 떨림, 어지러움 등은 모두가 '사실 아님'입니다. 후자의 반응은 모두 우니히필리가 생산하는 마나Mana(생명에너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때 생산된 마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소진되지 않으면 계속 나의 혼란을 점점 더 가중시키는 쪽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때 발생한 마나를 소진시키는 것이 정화입니다. 정화가 끝나서 우리의 정신이 맑은 상태로 현실에 있게 되면 그거서이 '제로 상태'인 것이지요. '사실 아님'을 정화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결정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정만이 아니라 그 어떠한 반응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바꿀 수 없는 것은 바꾸려 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없다고 믿기에 인생이 힘들어집니다.
바꿀 수 있는 사실 아님을 앞으로 '망상'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망상은 한 사람을 자신 속으로 삼켜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망상 속으로 도피해서 망상을 진실로 알고, 망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에너지를 씁니다.
메타프레임의 정화
메타프레임이란 한 사람이 사실을 바라볼 때 기초가 되는 믿음체계입니다.
'마땅히 그러한 식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믿는 방식'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 기초 믿음체계(메타프레임)는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에서 유래합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건 없다
1.have to : ~를 해야만해
2.should be : ~하게 되어야만 해
결국 메타프레임의 정화란 더 이상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즉, 정화의 결과로 상황이 나아지고 편해지고 해결되기를 기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람들은 모두가 집착이기 때문입니다. 정화의 결과로 오히려 문제가 악화되고 더 꼬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며 내가 그러한 체험을 해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 체험이 나에게 의미를 가지게 되고, 마땅히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부표상
'내부표상'은 우리가 체험하는 수많은 것들은 뇌의 시뮬레이션에 의한 결과임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저 우리가 받아들인 외부 자극을 시뮬레이션 하는 '패턴'을 정화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벤트(기)를 고착된 방식으로 해석하는 패턴이 나에게 존재하기에 현실이 그렇게 나타났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벤트(기)의 해석 패턴을 정화한다는 것은 해석 패턴에 대한 집착을 놓아줌을 말하며, 신성(아마쿠아)에서 보는 가장 선한 방식으로 해석하게 될 때 체험세계(현실)도 변화할 수 있게 됩니다.
내부표상 : 특정한 외부자극을 / 어떠어떠하게 해석하여/ 시뮬레이션 하는 내적 구조
수동적 정화와 능동적 정화
수동적 호오포노포노
예를 들어 가까운 친구가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는 내 의도가 아니며 예측할 수 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에 대해서 나의 우니히필리는 불안해하며 과거의 기억 패턴을 재생하려 합니다. 이때 우니히필리를 안심시키고 우하네가 현실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수동적 호오포노포노의 기본적인 형태입니다.
문제 상황이 되면 우하네가 침착하도록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우하네가 혼란스러워하고 두려워하면 그때 우니히필리는 '내가 뭔가 큰 문제를 일으켰구나' 생각하며 어떻게든 자신이 해결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니히필리가 알고 있는 해결 방법이란 갖고 있는 기억을 꺼내서 현실에 대하여 집착을 투사하는 것뿐이므로 문제가 더 악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정화의 첫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응(react)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경험할 때 반사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습관적인 반응의 대부분은 그 결과가 좋지 않거나 나중에 후회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반응(react)이 아닌 행동(act)을 할 수 있도록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반응이라는 것은 자동화, 즉 우니히필리의 자동적인 기억 재생 패턴이기 때문에 지혜롭지 못한 선택으로 이어지는 확률이 높습니다.
'내(우하네)가 우니히필리를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당신(우니히필리)의 잘못이 아닌데, 마치 당신의 잘못인 것처럼 느끼게 한 것을 용서해주세요.'
'무슨 일이 있던지 우니히필리를 사랑합니다. 그러니 안심하세요.'
'늘 나와 함께하고 나를 도와주려 해서 고맙습니다.'
수동적 호오포노포노란 갑자기 어떠한 일을 만나서 놀란 우니히필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기억을 재생하려는 것을 안심시키고 다독여서 그 기억의 재생을 아마쿠아에게 맡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능동적 호오포노포노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미리 우니히필리에게 이야기하여 그러한 일이 일어나도 놀라서 과거의 기억을 재생하지 않도록 잘 설명해두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길을 걸으면서 그 길에서 접하게 되는 기억을 정화하면서 계속 나아가라는 것 입니다. 물론 그 길의 끝에서 나의 바람이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건 아니건 간에 평화를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정화가 잘 되지 않을때
정화의 대상은 '기억의 재생방식에 대한 집착'입니다.
'지금 그 일을 체험해서 내가 그러한 감정을 느끼도록 만드는 기억들이 있고, 그렇게 기억을 재생해야만 한다고 믿고 있는(생각하고 있는) 집착을 정화합니다'
정화의 결과로 달라지는 것
정화의 결과로 얻게 되는 체험 중 하나는 스코토마(scotoma : 심리적 맹점)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스코토마 상태란, 사람이 한 가지 생각의 프레임에 갇혀 그 외의 선택지를 보지 못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부자가 되는 방법은 로또 당첨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거나, 특정한 사람과 연인이 되지 않으면 죽는 게 낫다는 등의 생각을 말합니다.
이러한 심리적 맹점 상태에서는 선택지가 극단적으로 좁아지게 되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당연한 것 같은 선택지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스코토마 상태는 메타프레임 때문입니다.
즉, '~가 되어야만 해' 혹은 '~하게 되어야만 해' 같은 메타프레임이 시야를 좁게 만들고 선택지를 제한적으로 만듭니다. 이때 메타프레임을 정화하면 스코토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로 인해 다른 선택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3부. 후나의 정화 기법
후나의 정화기법들(1)
하 호흡법
들숨 - 멈춤 - 날숨 을 1:1:2의 비율로 호흡합니다.
날숨을 내쉴 때 '하~'하고 소리를 내며 내쉽니다.
4회반복하는 것이 하 호흡의 1주기
4의 배수의 횟수로 합니다.
자동 호오포노포노
매일매일 정화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데이터들을 공유하고, 새로운 재생방식을 만들어내며, 도구 역시도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과 접하면서 그들과 공유한 기억을 재생하기 때문입니다.
4부. 호오포노포노&후나 칼럼
우니히필리와 친해지기
'사랑해'로 무의식(우니히필리)을 부르면서 안심시킵니다.
'미안해'로 나의 쓸데없는 집착으로 무의식(우니히필리)이 기억을 재생하도록 만든 것에 대해 사과합니다.
'용서해줘'로 나의 잘못을 빌고, 이제 그 기억의 재생을 놓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고마워'로 이러한 모든 과정을 함께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줍니다.
우니히필리가 고통받을 때
'기억'을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재생방식'을 정화한다는 것입니다.
'기억의 재생방식'이란 다른 말로는 '아카코드의 구조'입니다.
이러한 기억들은 그 자체로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만 우니히필리에 깃든 우하네(나 자신)가 저장한 패턴이 문제입니다.
대원만법과 정화
이미 내 마음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완벽하기에 '위대한 완전성'이라는 대원만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직 자신의 마음과 이 세상을 완벽하게 보지 못하는 '자신의 미혹된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정화가 일어나면 드디어 자신의 마음과 세상은 본래 그 모습 그대로의 완전성을 드러냅니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진실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상황과 관점과 입장에 따른 제한적 진실일 뿐이지요. 그렇기에 이 세상에는 반대로 절대적인 거짓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상황과 관점과 입장에 따른 제한적 거짓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제한적으로 진실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그것을 그냥 도구로써 사용하면 됩니다.
어느 한 곳에 얽매이지 않고 이렇게 도구를 자유롭게 바꾸어 사용하는 것이 바로 생생한 삶이라고 봅니다.
경험담1
저의 내면아이는 참고 또 참으며 누군가의 위로와 격려를 기다렸구나.
앞으로 내면아이인 우니히필리의 의사를 존중하고 들어주겠다는 것과 내가 미처 살피지 못하면 먼저 알려달라는 부탁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속 함께 정화하자는 것 등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가슴이 후련해졌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다른 정화꺼리와 마주치더라도 이제는 우니히필리와 둘이서 함께 정화할 수 있다는 든든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에필로그
모두가 함께라는 연결감, 자비와 사랑, 봉사 이 세가지가 바로 깨달음의 증표.
정화가 잘 이루어진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 세 가지를 추구한다고 봅니다. 상황이 되면 타인과 연결되려 하고, 사랑하려 하고, 봉사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부처님의 '이 세상에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이체개고)'라는 말씀처럼 인간이 행복해지는 방법은 없다고 봅니다. 단지, 할 수 있는 것은 불행 앞에서 늠연하고 담담하게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겨내면서 그 옆에서 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여유까지 얻는 것이 바로 정화의 길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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