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자는 마구 넘겨 버리지만, 현명한 자는 열심히 읽는다.
인생은 단 한 번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장파울

 

1장. 어떻게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는가

도덕적인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왜 사람들이 자기 이익과 상관없는 일에도 예의바르고 선하게 행동하는지

무엇보다 애덤 스미스는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 무엇이 사람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아내고자 했다.

경제학자에 대한 오해들도 분명히 있다. 사람들은 경제학을 내부구조를 터득하면 조작이 가능한 기계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정확한 예측을 원하는 대중들에게 경제학자들은 구체적인 답을 줄 수 없다. 경제는 조작과 예측이 가능한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침체를 예측하지 못하고, 대침체에서 탈출할 동일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할 뿐더러 회복 과정 역시 예견하지 못할 수밖에.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이 가진 이런 한계를 순순히 인정해야 하며 더불어 겸손해져야 한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우리 인생에서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다룬다. 경제학은 인생에서 유일한 가치가 돈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선택에는 포기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겉으로는 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들과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얽힐 수 있는지, 그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경제학이야말로 인생을 최대치로 활용하는 방법에 관한 학문이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인생을 최대치로 활용한다는 것은 곧 인생에서 현명하고 훌륭한 선택을 최대한 많이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하나를 취하고 다른 하나를 버리는 선택에 대하여, 그리고 내 선택이 다른 사람들의 선택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 이해하는 것이 바로 경제학의 본질이다.

 


2장. 나에게 질문하는 시간

'국부론'의 초반부를 보면, 번영을 이루어내는 전문성의 힘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인간은 자신이 잘 하는 한 가지 일을 전문화하는 대신, 나머지는 타인의 도움을 통해 얻고자 한다. 이때 인간이 극단적인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인간은 타인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대체 왜 주겠는가.
그렇다면 이기적인 인간은 어떻게 타인이 원하는 것을 주게 된 것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스미스가 새로 정의한 이기심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이 원하는 것을 그냥 주는 게 아니라, 타인이 답례로 무언가를 줄 거라고 전제했기 때문에 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정의한 이기심이다.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단순한 개념의 이기심과는 분명 다른 의미다.

우리가 고기와 술, 빵을 먹으며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업자. 빵집 주인이 관용을 베풀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이익을 중시했을 뿐이다. 때문에 우리는 그들과 거래할 때 그들의 인간애가 아닌 자기애에 호소한다. 또한 우리가 필요한 것을 말하지 않고 그들에게 유리한 점을 말한다.

사람이 가장 큰 신경을 쓰는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이 사실을 기억해두면, 상대로부터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때 상당한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열정적으로 조언하는 부분이다. 이렇듯 우리는 사는 동안 가끔은, 아니 매우 자주 자신이 우주의 중심인 것처럼 착각한다.
자, 지금부터 당신이 나보다 당신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는 방식을 '당신의 철칙'이라 부르자. 당신에게 철칙이 있다면 나에게도 당연히 '나의 철칙'이 있지 않겠는가. 나 역시 당신보다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니까. 각자 우주가 자기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방식, 이러한 '각자의 철칙'이 바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다.

우리는 모든 것을 내 위주로 생각하낟.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항상 나에게 득이 되는 쪽으로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스미스 역시 사람들이 이타적인 행동과 이기적인 감정을 어떻게 조화시키는지 궁금해했다.

인간이 이토록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인데도, 어떻게 우리 행동은 종종 그렇게 관대하고 고상할 수 있을까?

그의 말처럼 우리 안의 인간애가 그토록 약한데도 왜 우리는 무턱대고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인 것이 아닐까? 스미스는 그 이유를 공정한 관찰자 때문이라고 답했다.
공정한 관찰자란 인간의 상상 속 인물로, 스미스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이 공정한 관찰자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공정한 관찰자는 우리와 대화를 나누며 우리의 행동이 도덕적인지 확인해주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물이다.

공정한 관찰자는 이성, 원칙, 양심, 가슴 속 동거인, 내부 인간, 우리 행동의 위대한 심판자이자 결정권자다. 그는 우리가 타인의 행복을 건드리려 할 때마다 우리의 몰염치한 격정을 향해 깜짝 놀랄만큼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친다.
"당신 역시 먼지처럼 많은 세상 사람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잘나지 않았다. 당신이 계속 그렇게 추잡스러우리만치 이기적으로 군다면, 분명 사람들의 분노와 혐오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인간이 그저 한낱 미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겸손하라고 조언한다.

우리는 공정한 관찰자의 눈을 통해서만 잘못 발현된 자기애를 바로잡을 수 있다.

우리가 신성한 미덕을 실행하는 것은 이웃과 인류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인류애보다 더 큰 사랑, 더 강력한 애정 때문이다. 그것은 명예롭고 고상한 것에 대한 사랑, 존엄과 위엄에 대한 사랑, 그리고 탁월한 자신의 인격에 대한 사랑이다.

"신에 대한 완전한 믿음은 '신이 어디선가 나를 항상 지켜보고 있다.'라는 전제에서 시작하지."

인간의 도덕의식은 다른 사람들의 지지와 반감을 경험하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타인의 반응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심판하는 공정한 관찰자를 상상하게 된다.
 공정한 관찰자를 상상하면, '실제로 바르게 행동했는가'와는 별도로 이를 통해 강력한 자기 수양을 할 수 있다. 공정한 관찰자를 상상하면, 나 자신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다. 이는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피하거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용감한 행동이다.
그러나 이를 피하지 않고 잘 해낼 수 있다면, 즉 한 걸음 물러서서 자신을 지켜볼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 어떻게 하면 점점 나아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결점과 습관을 잊고 평생을 방랑하듯 사는 대신, 마으 ㅁ챙김(불교에 기인한 심리학 용어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을 하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이 착하다고 생각한다. 극악한 살인자조차도 자신의 행위가 왜 정당한지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나 자신이 '나의 철칙', 즉 피할 수 없는 자기중심적인 성향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서야 한다.
철칙 속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고 싶어하며 실제로 그렇든 아니든 스스로 착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 순간이 '나의 철칙'이 내뿜는 열기에 꿈쩍도 안 하는 공정한 관찰자를 떠올려야 하는 타이밍이다.

사람이란 본래 자기 자신에 대해 얘기하기를 좋아하니까. 그리고 자기 의견을 입증하기도 좋아한다. 각자 하나같이 할 말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대화를 할 때 내 얘기를 하기 위해 상대의 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대신,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인 적이 얼마나 있는가? 상상속의 공정한 관찰자는 당신의 대화 스타일을 어떻게 평가할까? 공정한 관찰자를 상상하면, 대화라는 행위가 상대의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내 얘기를 쏟아내는 힘겨운 운동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추는 춤으로 바뀌게 된다. 서로 경쟁하듯 내뱉는 독백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진정한 대화로 거듭나는 것이다.

무시하거나 부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나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생각해보라. 사람들은 가끔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에 부당하다면 마음껏 화를 내곤 한다. 스미스는 그럴 때 한 걸음 물러서서 자신을 지켜보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물어보라고 조언한다.
'혹시 내가 정의로운 십자군이 아니라 단순한 투덜이로 보이지 않는가?'
짜증과 화가 솟구칠 때면,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라. 부당하다는 느낌에 불을 붙이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찾게 해줄 것이다.

 


3장. 행복을 위한 새로운 우선순위

애덤스미스는 명예나 재산을 추구하는 삶에 열광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우리를 정말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우리를 정말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사랑받기를 원할 뿐 아니라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스미스는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고, 존경하고, 자신에게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이 표현을 썼다. 틀린 말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고, 칭찬하고, 소중하게 여기길 바란다.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대해주기를 원한다.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하고, 함께 있을 때 즐거워하기를 원한다.

행복이란 감정은 사랑받는다는 느낌으로부터 생겨난다.

스미스식 사랑스럽다는 말은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편이 좋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건네는 사랑이 진짜이기를 원한다. 스미스는 우리가 자신의 평판, 즉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에 신경을 쓸 뿐더러, 그 평판을 정직하게 얻었는지, 그 평판이 자신의 진짜 모습에 걸맞는지 신경을 쓴다고 말한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다시 말하면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자격을 갖추고 싶어 한다. 또한 인간은 선천적으로 미움받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워한다. 다시 말하면, 미움받아 마땅한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인간은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즉, 아무도 자신을 칭찬하지 않는다고 해도 마음으로는 칭찬받을 자격을 갖추고 싶어한다. 인간은 비난받는 사람이 될가 봐 두려워한다. 즉, 아무도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다고 해도 마음으로는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워한다.

훌륭한 부부들은 상대에 대한 점수를 기록하지 않는다. 내가 당신을 위해 이 일을 해줬으니 이제는 당신이 나를 위해 그 일을 해줄 차례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혼생활에 수반되는 모든 문제들과 씨름할 때마다 나는 더 많이 얻으려는 욕심이 아닌 더 많이 줄 때의 가치를 배운다. 나는 아내에게 더 사랑스러운 남편이 되기 위해 날마다 노력한다.

스미스의 이상은 내면의 자아가외면의 자아를 그대로 비출 때, 즉, 사람의 겉과 속에 다름이 없을 때 실현된다.

결론적으로 스미스는 스스로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상상만 하지말라고 조언했다. 실제로도 꼭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것이 삶의 진리이자 순리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스미스의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 가짜를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까. 우리는 스스로 진짜가 되고 싶어하고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갖는 생각이 진짜이기를 바란다.

누구나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그러나 자신이 칭찬받을 자격이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알면 그 칭찬을 즐길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 칭찬을 받는 듯한 어색함 때문이다.

내가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 혹은 실행하지 않은 나의 동기에 대해 칭찬하는 사람은 나를 칭찬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칭찬으로부터 어떤 만족도 얻을 수 없다.

그 칭찬은 우리에게 어떤 비난보다도 더 큰 굴욕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그 칭찬으로 인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반성을 하게 된다. 그 칭찬처럼 되지 못한 지금의 우리 모습에 대하여.

과분한 칭찬은 어떤 의미에서는 비난과 같다. 내가 할 수 있었지만 못 한 일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가장 나약하고 가장 천박한 인간들만이 칭찬을 받으면 크게 기뻐한다. 자신이 절대 그럴 자격이 없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거짓 칭찬을 거부할 줄 안다.

나약하고 바보 같은 사람은 칭찬받을 자격이 없는데도 칭찬받기를, 다시 말하면 사랑스럽지 않은데도 사랑받기를 원한다. 스미스는 내면의 자아와 외면의 자아를 잘 조화시키라고 조언한다. 사람이라면 가끔 실제로 사랑스럽지 않는데도 사랑받고 싶어 할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스미스는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런 충동을 억제할 줄 안다고 날카롭게 말한다.

스스로 믿고 싶은 거짓된 칭찬 역시 언제나 존재한다. 보통 아첨이라고 부르는 이 거짓 칭찬  때문에 잘못된 자신의 이미지를 바로잡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 하기 때문에, 가끔은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걸맞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다 당신 덕분이에요.'라고 할 만큼의 능력을 갖추었다고 착각한다.

우리의 인생은 다방면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사랑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내 주변 사람들도 똑같이 다 사랑받고 싶어 한다. 때때로 그들은 전략적인 이유 때문에, 또는 그냥 실수록 우리를 속이곤 한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스미스는 우리에게 이런 아첨에 속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대면하라고 권한다. 그래야 현실이 정반대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충분히 사랑스러워!'라며 자기최면을 거는 우를 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칭찬을 거부할 수 있다. 그러나 현명해지는 게 어디 그리 쉬운가. 특히 우리가 가장 거부하기 힘든 것은 바로 스스로에게 건네는 칭찬이다.

 


4장. 진짜와 가짜 구별하기

5장. 잘되는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까


6장. 사랑받는 사람이 되는 법


7장. 끌리는 사람들의 공통점


8장. 불확실한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9장. 살기 좋은 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


10장. 현재의 우리를 위한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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