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은 심히 알기 쉽고 심히 행하기 쉬운데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행하지 못한다.
말에는 근원이 있고
일에는 중심이 있거늘,
저들이 이를 알지 못하는 까닭에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이해하는 자 드물고
나를 따르는 자 귀하니,
그러므로 성인은 겉에는 베옷을 걸치고
안으로 구슬을 품고 있다.
가. 노자의 고독
노자는 어느 장에서는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면 도라고 하기에 부족하다(제41장)'고 탄식하는가 하면, 또 어느 장에서는 '뭇사람들은 모두 쓸모가 있는데, 나 홀로 어리석고 촌스럽구나(제20장)'하며 쓸쓸히 읊조리고, 또 어느 장에서도 '천하가 모두 이르기를 나의 도는 광대하지만, 어리석은 것 같다고 한다(제67장)'며 한숨짓고 있다. 이 장도 마찬가지이다. 이 장도 역시 한 위대한 인물이 느낄 수 밖에 없었던 실존론적인 고독을 절절히 보여준다.
세상이 추구하는 것은 재물이고, 돈이고, 부귀영화이지 결코 진리가 아니다. 세상은 유사 이래 한번도 이것 이상을 추구한 적이 없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만약 그대가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세상을 향해 자꾸 이것 이상을 이야기하면, 그대는 비웃음을 사거나 어리석다고 바보취급을 당할 것이다. 더욱이 그대의 진리가 그들이 추구하는 바의 재물과 돈과 부귀영화를 저해하거나 위태롭게 한다면 - 간혹 진리가 너무 순수하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 - 그때는 핍박받고 박해받으며 심지어 유배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대와 세상이 이렇게 생각이 틀리고 추구하는 것이 틀린데 어떻게 소통이 가능하겠는가? 어떻게 세상 사람들이 그대가 하늘 말을 알아듣겠는가. 노자가 하는 말이 이것이다.
내 말은 심히 알기 쉽고 심히 행하기 쉬운데
사람들은 알지 못하고 행하지 못한다.
이것이 '진리'와 '세상'과의 관계이다. 세상은 진리 같은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리는 사람들을 꾸짖으며, 잠 못 들게 하고, 각성시키며,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 노자의 탄식
말에는 근원이 있고 (言有宗 언유종)
일에는 중심이 있거늘, (事有君 사유군)
저들이 이를 알지 못하는 까닭에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노자는 자기의 말에는 근원(宗)이 있다고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도(道)이다. 노자의 모든 설법은 도(道)에서 나온다. 또 노자는 자기의 일에는 중심(君)이 있다고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 역시 도(道)이다. 노자는 도(道)에서 벗어난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천지 만물과 인간의 행위 모두를 관통하는 도(道)가 우주에는 있다. 노자는 이것을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눈앞의 사물에 사로잡혀 하루하루 살아갈 뿐, 사물의 배후에 있는 어떤 근원적인 원리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과 노자 사이에는 거대한 괴리가 있는 것이다.
다. 피갈회옥(被褐懷玉)
나를 이해하는 자 드물고
나를 따르는 자 귀하니,
그러므로 성인은 겉에는 베옷을 걸치고
안으로 구슬을 품고 있다.
이 세계는 우리 호모사피엔스라는 동물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인간중심적으로 이론구성을 해놓은 세계이다. 이것을 우리는 상식과 통념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상식과 통념이란 것은 우리 인간에게는 여러모로 편리하고, 타당하며, 입맛에 딱 맞지만,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천지자연의 관점에서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천지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세계는 도(道)로부터 멀어도 한참 먼 것이다. 이 우주는 인간의 상식과 통념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러므로 만약 그대가 영원한 천지자연의 도에 다가가려면 어느 순간에 인간중심적 사고를 넘어설 줄 알아야 한다.
사는 데 편리하다고 해서 끝까지 인간본위적 생각만 고집하면 인간을 초월하는 광대한 우주에 대한 비젼을 얻을 수 없게 된다. 그렇게되면 사람이 옹졸하며 편협해진다. 때로는 상식과 통념을 내려놔 보라. 때로는 인간중심적인 시각을 멈춰보라. 이 우주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마치 태양이 우리를 위해 아침이면 떠오르고, 공기는 우리가 호흡하기 위해 존재하며, 물은 우리가 마시기 위해 존재하며, 장작은 때기 위해 존재하며, 고기는 낚시질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런 모든 것은 터무니없는 생각들이다. 그것이 아니고 실은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이 거대한 천지에 붙어 사는 하나의 미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 미물은 신기하게도 다른 미물과 달리 이 세계를 인식하고 싶어 한다. 다른 미물들은 별다른 '인식'없이 곧장 '행동'하고 사는데 반해, 이 미물만큼은 웬일인지 꼭 '인식'하려 한다. 이 '인식'에 대한 욕구, 이것이 이 미물을 다른 미물과 구별되는 '인간'으로 만들어준 결정적 요인이다.
그런데 이 인식이 문제이다. 인간은 주변의 모든 것을 인간본위적, 인간중심적으로만 생각한다. 그는 자기 생존에 필요한 온갖 지식을 탐욕스럽게 긁어모은다. 이렇게 모은 지식의 총체, 그것이 바로 '상식과 통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상식과 통념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꽉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우리가 그것을 꽉 움켜쥐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만큼 이 상황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러나 이 우주라는 것은 인간의 인식방식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며, 도(道)라는 것은 인간이 생겨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우주의 질서이다. 그러므로 우주와 인간 간에는 메꿀 수 없는 괴리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우주의 존재양식과 인간의 존재양식은 근원적으로 다른 것이다.
우리 인간은 아는 것이 상식과 통념뿐이며, 또 그런 이유에서 오로지 상식과 통념에 의존하여 우주의 비밀을 인식하려 하지만, 그렇게 알게된 우주의 모습은 왜곡된 것이며 조작된 것이지 결코 우주의 참모습이 아니다. 그러므로 궁극의 진리를 개우치려면 어느 순간에 상식과 통념을 완전히 뒤집어엎고, 인간중심적인 사유방식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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