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무사는 무용을 내보이지 않고,
훌륭한 전사는 성내지 않으며,
적을 잘 이기는 자는 남과 대적하지 않고,
사람을 잘 쓰는 자는 자기가 먼저 낮춘다.

이를 일러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하고,
이를 일러 '남의 힘을 쓰는 것'이라 하며,
이를 일러 '하늘에 짝함'이라 하노니,
옛날의 지극한 도이다.


 

가. 빨간 띠

아무 데서나 무공을 내보이는 자는 하수다. 고수는 자신의 무공을 깊이 감추고 잘 드러내지 않는다. 어디서나 초짜가 앞에 나서 설치는 법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며,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 노자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知者不言 言者不知)'.

태권도도 빨간 띠가 제일 무섭다. 빨간 띠는 자기의 무공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서 안달이다. 눈에는 살기가 등등하고, 아무 데서나 발차기를 하며, 사방을 날아다닌다. 그러다가 초단을 따고 2단 3단이 되면 어딘지 점잖아지고, 5단 6단이 되면 묵직해지고, 7단 8단이 되면 마침내 눈빛이 고요해진다.

 

나. 하수와 고수

훌륭한 무사는 무용을 내보이지 않고,
훌륭한 전사는 성내지 않으며,
적을 잘 이기는 자는 남과 대적하지 않고,
사람을 잘 쓰는 자는 자기가 먼저 낮춘다.

노자가 볼 때 인생에는 하수와 고수가 있다. 하수는 목소리만 크고 시끄러울 뿐 정곡을 찌르지 못한다. 반면, 고수는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하지만 필요한 곳에서 바로 정곡을 찌른다. 노자는 우리에게 고수의 길을 보여준다. 하수란 무엇인가? 그것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말한다. 그것은 남의 눈을 의식하고, 거품이 끼어 있으며, 부자연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결국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삐걱댄다. 반면, 고수란 무엇인가? 그것은 저비용 고효율 구조이다. 그것은, 자기가 다 하려 하지 않고 많은 부분을 하늘에 맡긴다. 그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담백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그러므로 그는 주변과도 잘 조화를 이루며 물처럼 살아간다. 그런 까닭에 그는 남과 다투지 않는다. 요컨대, 노자에 의하면 하수와 고수의 가장 큰 차이는, 하수는 남과 다투지만 고수는 남과 다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노자가 말하는 '부쟁지덕(不爭之德 : 다투지 않는 덕)'이다. 이 '부쟁의 덕'이라는 노자의 사상을 더욱 깊이 연구하여 발전시킨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장자(莊子)이다. 장자가 전하는 '싸움닭'이야기를 들어보자.

기성자가 왕을 위해 싸움닭을 기르고 있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물었다.
"닭이 쓸만한가?"
"아직 멀었습니다. 쓸데없이 허세를 부리고 자기 힘만 믿고 있습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또 물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다른 닭의 울음소리를 듣거나 그림자만 보아도 덤벼들려고 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또 물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아직도 상대를 노려보고, 혈기왕성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또 물었다.
"이젠 됐습니다. 옆에서 다른 닭이 아무리 울음소리를 내며 싸움을 걸어와도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나무로 깎아 놓은 닭(木鷄)' 같습니다. 비로소 그 덕이 온전해진 것입니다. 다른 닭이 감히 덤벼들지 못하고 보기만 해도 달아나 버립니다.
-장자 [외편]

유명한 '목계지덕(木鷄之德)'의 우화이다. 노자의 '부쟁지덕'이 장자에게 와서 목계지덕으로 한층 구체화되고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옛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근거로 나무를 깎아 닭을 만들어서 앞에 두고 정신수양을 했다고 한다. 싸움닭들이여, 이 우화를 깊이 새겨들으시라.

이를 일러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하고,
이를 일러 '남의 힘을 쓰는 것'이라 하며,
이를 일러 '하늘에 짝함'이라 하노니,
옛날의 지극한 도이다.

도를 체득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남과 다투지 않고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남의 힘을 쓸 수 있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를 하늘을 거스르지 않고 '하늘에 짝하는(配天 짝지을 배,하늘 천)' 삶의 방식이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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