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도덕경

[노자 - 도덕경] 제53장

snugpoooh 2015. 10. 1. 08:44

가령 내게 겨자씨만한 앎이 있다면
대도(大道)를 걸을 것이며
샛길에 들까 두려워 할 것이다.
대도는 지극히 평탄하건만,
사람들은 샛길만 좋아한다.

그리하여 조정은 심히 더러워지고
논밭은 심히 황폐하며
창고는 텅텅 비었따.
그럼에도 위정자들은
화려한 비단옷을 걸쳐입고
날카로운 검을 차고
맛있는 음식에 물리고
재물은 쓰고도 남아돌아 가니,
이것이 도둑질한 영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실로 도가 아니도다!


 

우리는 노자의 무위(無爲)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면 안 된다. 노자의 무위는 '등따숩고 배불러' 아무 근심 걱정이 없는 상태에서 나온 부르조아적 개념이 아니다. 무위는 인간세상의 환난과 불행을 깊이 통찰한 현인에게서 나온 자아성찰적 개념이다.
무위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자들을 위한 슬로건도 아니고, 행동의 실행력을 상실한 자들을 위한 자기변명도 아니다. 또한 무위는 지금 이 세상이 아주 잘 돌아가고 있으니, 모두 현실에 만족하여 뒷짐이나 지고 각자 조용히 살아가자는 체제순응적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무위는 지금 눈앞의 세상이 어떤 유위와 작위에 의해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이 세상을 한번 바꿔 보려는 사람들을 위한 반항적 개념이며, 제멋대로 권력을 농단하며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들을 따끔하게 비판, 훈계하기 위한 계몽적 개념이다.
달리 말하면 무위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지금 있는 그대로 냅두고 살자는 이른바 '렛잇비(Let it be)'상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정치적으로 잘못 시행된 여러 작위를 바로 잡아 근원적인 우주의 질서, 즉 도(道)에 복귀하고자 하는 것이다. 요컨대, 무위는 현상유지적(Status-Quo)개념이 아니라, 현상타파적 개념이다. 이 점을 오해하면 노자 전체를 오해하는 것이다. 노자는 무위를 가지고 한 번도 형상유지적 태도를 취했거나 그것을 옹호했던 적이 없는 사람이다. 무위는 그런것이 아니다. 무위는 본질적으로 인위와 작위를 멀리하는 것이며, 극복하는 것이고, 바로잡는 것이다. 정치의 영역은 인간의 인위와 작위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온갖 사리사욕과 부정부패-이것이 인위이고 작위이다-를 일삼는 위정자들 때문에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바로 이러한 상황, 이러한 현실인식 위에서 노자는 자기 철학의 핵심인 무위(無爲)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