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 도덕경] 제52장 부드러운 것이 진정 강한 것이다.
천하 만물에는 시원이 있나니
그것을 천하의 어미라 한다.
그 어미를 알면
그 아들을 알 수 있거니와,
이미 그 아들을 알고서
또한 그 어미를 지킨다면
몸이 다할 때까지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그 입구를 막고
그 문을 닫으면
평생토록 수고롭지 않으나,
그 입구를 열어둔 채
일을 이루려 하면
평생토록 구제받을 수 없다.
작은 것을 보는 것이 진정 지혜로운 것이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이 진정 강한 것이다.
지혜의 빛을 쓰되,
다시 본래의 밝음으로 돌아가야
몸에 재앙을 남기지 않으리니,
이것이 영원함을 배우는 것이다.
색기태(塞其兌) - 그 감각의 입구를 막고, 폐기문(閉其門) - 그 욕망의 문을 닫아라. 그래야 평생토록 인생이 수고롭지 않다. 이목구비 등의 이른바 칠규(七竅 : 일곱구멍)를 통제하지 못하면 감각이 요동치게 되고 정신이 분산되어 혼이 피곤해진다. 외계와 접촉하는 욕망과 탐욕의 문을 잘 단속하지 못하고 열어둔 채 이런 저런 일을 행하면 어느 것도 제대로 될 수가 없다. 그런 인생은 종신불구(終身不救), 즉 평생토록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니 감각과 지각의 문을 잘 닫고, 욕망과 탐욕의 입구를 잘 막아라. 그것이 지혜로운 이의 길이다.
큰 것을 보는 것은 눈 밝은 것이 아니다. 큰 것은 누구나 다 본다. 남이 보지 못하는 작은 것을 보는 것이 진정 눈 밝은 것이다. 노자가 제14장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도(道)는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잡아도 잡히지 않는다'고. 즉, 도는 잘 안 보이고 희미한 것이다. 희미하고 희미해서 통상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일반인들은 도를 쉽게 볼 수 없다. 이것이 도의 본질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자연은 숨기를 좋아한다'는 경구도 실은 이 비슷한 관념을 표현한 것이다. 도(道), 자연, 사물의 핵심, 이런 것들은 잘 안 보인다. 그런 것들은 드러나있는 것이 아니고 감추어져 있다. 그런 것들은 크지 않고 작다. 큰 것은 누구나 다 본다. 작은 것을 보는 것이 진정 눈 밝은 것이다.(見小曰明 : 견소왈명)
끝까지 강한 척 하는 것은 강한 것이 아니다. 약한 사람이 끝까지 강한 척 한다. 그는 자신의 약함이 드러날까봐 두려운 것이다. 반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끝까지 강한 척 하지 않는다. 그는 양보도 하고, 물러나기도 하며, 져주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강함을 끝까지 남에게 관철시키려 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에게는 어딘가 부드러움이 있다. 그는 어딘가 유연하며 여유가 있고 경직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지속적으로 강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수유왈강(守柔曰强 :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이 진정 강한 것이다)이다.
노자[도덕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이런 의미심장한 경구들을 깊이 숙고하고 몸에 체득해야 한다. 노자[도덕경]은 머리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공부해야 한다. [도덕경] 한자 원문을 줄줄 외우고 다니거나 그럴듯한 사자성어 몇개를 암송하고 다니면서 지혜 있는 척하는 것은 [도덕경]을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도덕경]과 무관하다. 노자의 [도덕경]은 아는 체 하는 것, 잘난 체 하는 것, 학자인 체 하는 것을 싫어한다. [도덕경]은 우리를 유식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머리에서 먹물을 빼려는 것이다.
이것이 노자의 도(道)이다. 그러므로 [도덕경]을 공부하고 너무 똑똑해지거나 유식해지면 안 된다. 그것은 [도덕경]을 잘못 읽은 것이다. [도덕경]을 공부하고 나면 자신의 광채를 꺾고 세상의 티끌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