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도덕경

[노자 - 도덕경] 제45장

snugpoooh 2015. 9. 10. 08:45

완전한 것은 모자란 듯하나
그 쓰임에는 다함이 없고,
가득 찬 것은 비어있는 듯하나
그 쓰임에는 막힘이 없다.
아주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아주 오묘한 것은 서툰 것 같으며,
아주 뛰어난 웅변은 더듬는 것 같다.

몸을 움직이면 추위를 이길 수 있고
고요히 있으면 더위를 이길 수 있으니
맑고 고요해야만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왜 어렵고 복잡한가? 그들 자신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체하다 보니 말이 어려워지고, 말이 어려워지다 보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빙빙돈다. 이른바 형이상학적 언어의 유희가 시작되는 것이다.

"너희의 자기중심적 태도를 내려놓으라. 너희의 자아를 내려놓으라. 천지자연의 도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너희 곁에 있다. 천지자연의 도가 닫혀있는 것이 아니라 너의 귀가 닫혀있다. 천지자연의 도가 막혀있는 것이 아니라 너의 영(靈)이 막혀있다. 천지자연의 주파수는 무위이다. 유위를 버리고 무위에 주파수를 맞춰라."

가득 채우는것이 자기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가득 채우는 것은 오히려 자기를 질식시키는 것이다. 진정으로 자기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를 비워야 한다. 텅 비워 마음에 여백을 만들고, 빈 공간을 만들어라. 그 빈 공간 안에서 섬광처럼 번쩍이는 영감이 나오는 것이다. 결코 잡동사니가 꽉 차있는 방에서는 영감이나 착상이 나올 수 없다. 거기에는 분란과 충돌, 스트레스와 분노만이 가득할 뿐이다. 그러므로 너무 과도하게 완전을 추구하지 마라. 조금 비워두어라. 그래야 사람이 숨을 쉴 수 있다. 너무 가득 채우려 하지마라. 여백을 좀 남겨두어라. 그래야 다음에 한 번 더 써먹을 수 있다.

대직약굴(大直若屈 : 아주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대교약졸(大巧若拙 : 아주 오묘한 것은 서툰 것 같으며)
대변약눌(大辨若訥 : 아주 뛰어날 웅변은 더듬는 것 같다)

인생의 원숙한 지혜가 역설의 논리 속에 담겨 은은히 빛나고 있다. 천하의 명문장이 아닐 수 없다. 직과 곡, 교와 졸, 웅변과 눌변 등 완전히 상반된 개념들이 더 이상 대립하지 못하고 녹아내려 노자 안에서 하나가 되어있다. 이것이 무위의 모습이다. 무위의 사람은 자연을 닮아있다. 자연은 너무 날선 것, 너무 직선인 것, 너무 교묘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있으면 자연은 그것을 품에 안아 둥그렇게 만들고, 부드럽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