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글
에크하르트 톨레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항상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목소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목소리는 뭔가 자기 의견을 내놓고, 추측하고, 판단하고, 비교하고, 불평하고, 좋아하고, 싫어합니다. 그 목소리는 그때그때의 특정한 상황에 관련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깝거나 먼 과거를 재현한 것일 수도 있고,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미리 연습하거나 상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생은 컴퓨터 칩과 같은 기억, 혹은 24시간 우리의 마음속에서 들리는 테이프의 반복이다. 그것들은 우리를 끌고 다니고,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때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피할 수 없지만, 그 테이프들이 더 이상 반복되지 못하도록 '멈춤'을 선택할 수는 있다.
호오포노포노는 앞에서 말한 테이프들을 멈추고, 우리에게 좋지 않거나 혹은 우리의 삶에서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컴퓨터 칩을 없애는 방법을 알려준다. 안개를 걷어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을 정화하고 지울 때만 우리는 진정한 자신과 우리가 가진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지우고, 정화하고, 오래된 기억들을 없앰으로써 우리는 변화할 수 있고, 그때야 비로소 진정한 자아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호오포노포노는 용서와 회개, 변형을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도구를 사용하든, 우리는 온전한 책임을 지고 - 우리 자신에게 - 용서를 구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것들이 우리가 가진 '프로그램'의 투영일 뿐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놓아주고 관조하거나, 아니면 프로그램에 사로잡혀 반응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1.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우리가 삶속에서 해야 할 유일한 질문이다. 우리 존재의 목적은 자신의 진정한 본질과 주체성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의 유일한 고민이자 목표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의식은 우리의 정신적인 측면으로, 우리가 지성이라고 부르는 부분이다. 의식은 우리 존재에 있어 아주 중요한 측면인데, 왜냐하면 이곳은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부르는, 선택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 순간 삶 속에서 선택을 하고 있다. 무엇을 선택하고 있을까?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에 매여서 반응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놓아버리고 더 잘 알고 있는 부분이 그것을 해결하도록 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있다. 또 우리는 하나님보다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으며 모든 것들을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 그리고 우리는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을 - 받아들일 것인가를 선택한다. 의식은 우리가 "미안해요, 이 모든 일들을 만들어낸,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용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니면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지성은 알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지성은 어떤 것도 알 필요가 없다. 지성은 선물이며, 그 선물의 의미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2.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우리가 문제라고 이야기할 때만 문제가 됩니다.
문제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문제에 반응하는 방식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무의식은 모든 기억들을 저장한다. 이런 기억들이 잠든 채 기억 창고에 정리되어 있는 동안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사람들, 어떤 장소를 방문하거나 혹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이런 기억들은 깨어난다. 이렇게 기억은 생각으로 변화하여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은 또 다른 기회를 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알려주는 부분이다. 무슨 기회일까?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온전한 책임을 지고 말할 기회이다.
"이것을 창조한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용서해주세요. 미안합니다."
문제가 존재하는 곳에 당신도 항상 함께한다는 것을 알아챈 적이 있는가? 만일 문제가 당신의 내면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문제를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순히 생각해보면 문제들은 우리의 기억이 반복되는 것이다. 문제들은 마치 오디오 테이프에 녹음된 정보와 같다. 테이프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우리는 그것을 진짜라고 생각하게 되고, 문제는 계속 반복된다. 문제가 나타날 때 우리가 그것에 반응하고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문제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한 채 우리는 문제라는 함정에 빠져버린다. 그리고 단순히 그 문제를 놓아버릴 수 있는 경우에도 더 많은 문제들을 끌어당기게 된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집요하게 오로지 그것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적이 있는가? 이렇게 불합리한 순환이 시작되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 기록들을 막을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테이프는 돌아가고 있지만 그 소리는 작다. 심지어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무의식은 항상 테이프를 돌리고 있다. 이것이 백 퍼센트의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온전한 책임을 질 때만이 그것이 우리의 기록이고 생각이며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여러 가지 문제와 상황 그리고 사람들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처럼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인식은 우리 생각의 반영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 역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다. 문제는 항상 '기회'이다.
사건이나 문제들 그리고 우리가 창조한 것들에 대해 우리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 일이 불행인지 행운인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일은 단지 하나의 조각에 불과하니까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습니까. 삶은 조각들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이상의 것들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싫음과 좋음에 영향을 받는 자는 상황의 의미를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들 앞에서 절망하게 된다. 초연한 자는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며, 그 사람에게는 모든 일들이 새롭고 의미가 있다. 행복 뒤에는 슬픔이 따르고, 슬픔 뒤에는 행복이 따른다. 하지만 행복과 슬픔을 차별하지 않을 때, 좋고 나쁨을 차별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은 자유로워진다.
지성의 이해와 본질적인 지혜의 차이는 의자 위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산 정상에서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서 있는 사람의 차이와 같다. 우리는 여전히 의자위에서 의견을 쏟아내고 판단하며 우리의 관점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하도록 배웠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런 식의 행동에 '중독'되어 있다.
삶은 당신에게 온갖 종류의 흙더미를 집어던진다. 우물에서 나오는 비결은 흙을 떨어뜨려 그것을 밟고 올라오는 것이다. 모든 문제들이 오히려 디딤돌이 되는 것이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리 깊은 우물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다. 흙을 떨어뜨리고 그것을 밟고 올라설 수만 있다면 말이다!
3. 신념
우리의 진정한 힘은 행복이다. 그리고 행복은 우리가 모든 것들을 내던질 때 찾아온다.
우리는 신(사랑)이 일하는 방식을 알지 못하고, 심지어 아주 작은 부분조차 이해할 수 없다. 또 신이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상상할 수조차 없다. 흔히 말하는 기적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는 삶속에서 매 순간 기적을 체험할 수 있다. 그 기적은 우리가 모든 것을 지성으로 이해하는 것을 멈출 때, 우리의 판단과 의견들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삶의 흐름에 맡길 때 비로소 경험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각자의 삶의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곧잘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때가 많다. 문제를 신(사랑)에게 맡긴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그 문제들에 집착한다. 문제에 대한 생각들을 멈추지 못하기 때문에 혼란 속에서 걱정을 하고, 그에 대한 신념이 없기 때문에 해결하기를 원하는 것들만 신(사랑)에게 이야기한다. 바로 이런 뚜렷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는 응답받지 못한다. 스스로 올바르고 완벽한 해결책을 알고 있다고 믿으면서 신에게 무엇인가를 명령조로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방식을 원하는지, 심지어 우리가 원하는 것의 색깔과 시간까지 그에게 이야기 한다. 하지만 신은 우리가 요청하기 전에 이미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소리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와 아주 가까이 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신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것들을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는 그것들을 우리에게 줄 수 있도록 우리가 허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기대를 놓아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정확한 순간에 가장 적당하고 완벽한 것이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결코 알 수 없다. 이런 놀라움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그것이 올 수 있도록 허용해야만 한다.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천국은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이다. 천국을 경험하느냐 아니냐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우리가 할 일은 단지 수많은 생각들을 멈추고,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항상 옳다는 믿음을 내려놓는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의 생각들과 정보들, 그리고 우리가 받은 교육은 진정한 우리의 모습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천진난만함은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의 지혜이다.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과거로부터 쌓인 믿음들이 사라질 수 있도록 허용하기만 하면 된다.
삶은 각자의 마음에 따라 펼쳐진다.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을 다시 평화로 되돌릴 수 있는 것 또한 우리 자신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항상 옳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말하면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없다고 말하면, 그 말대로 우리는 할 수 없다.
우리는 삶을 살며, 또 누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이 곳에 있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우리를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이 자유는 우리가 그렇게 갈망하는 행복을 불러온다.
4. 돈
우리가 결과에 집착하고 상황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멈출 때, 평가와 판단을 그만둘 때, 그리고 우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상황을 삶의 과정에 내맡기고 수용할 때, 바로 그때 우리는 삶의 흐름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리에게 가장 쉬운 길로 다가온다. 신은 지구 위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주위를 둘러보면 신이 창조한 것은 모두 무한하고 풍요롭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직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만이 부족하고 제한되어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데는 믿음과 확신이 필요하다. 우주는 우리가 첫발을 내딛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허용하면, 우리가 필요로하는 모든 것들은 쉽게 다가온다. 중요한 것은 신이 그것을 줄 것이라고 백 퍼센트 -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 아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을 받지 못하고,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응답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신을 하인처럼 생각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과 그 방법, 색깔, 시간 등에 대해 요구 사항을 말한다. 이것은 우주가 움직이는 방식이 아니다. 아무런 기대없이, 그리고 우리에게 꼭 맞는다고 여기는 것을 주문하지 않고 요청할 필요가 있다. 신은 매 순간 가장 알맞고 완벽한 것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가장 중요한 비밀은 믿고 내맡기는 것이다. 자신을 삶의 흐름에 맡기고, 거의 기대하지 못했던 곳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사람으로부터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을 여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 문제는 우리의 기대다. 결과를 미리 원하면서 인내력을 갖지 못한 우리는 곧바로 경직되어 버린다. 그리고 모든 것들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는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일과 배우자, 투자등을 통해서 스스로 기회를 창조해냈다고 믿지만, 이런 것들은 일들이 성취되는 또 다른 방식이며 방법들일 뿐이다. 문이 닫히고 나면 또 다른 문이 자동적으로 열리기 때문이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일은 걱정하는 것이다. 걱정은 우리를 곤경에 빠뜨리고 가두며, 우리가 결코 원하지 않는 것들을 끌어당긴다. 그때의 우리는 자석과 같다.
지금 당신이 내게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을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 속에서 삶을 낭비한다. 돈 역시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필요로 하기 전이나 후가 아니라, 우리가 필요할 때 다가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슴을 열고 믿는 것뿐이다.
"만일 당신들이 부 또는 성공을 초대했다면, 우리 중 다른 두 사람은 그냥 밖에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사랑을 초대했습니다. 사랑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부와 성공이 함께하지요."
돈은 나쁜 것이 아니다. 나쁜 것은 오히려 돈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돈을 위해 일을 하면 모든 상황은 어려워진다. 돈은 금방 왔다가 우리의 손을 빠져나가버린다. 우리는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돈을 받지 않더라도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재능과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다른 누구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무언가는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있다. 그것은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며, 거기에는 대학 졸업장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풍요와 번영은 우리의 의식과 관련이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미 우리가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순간 우리는 이미 부유하다. 가슴을 열고 믿을 때, 우리는 모든 일이 삶속에서 펼쳐지도록 허용하게 된다.
5. 두려움
우리는 두려움과 고통에 중독되어있다. 우리가 두려움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친숙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두려움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고 그것이 주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편안함을 느낀다. 두려움은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친숙하게 다가온다.
용기를 내어 두려움을 직시하고 그것을 뚫고 나갈 때, 터널의 다른 끝에 이를 수 있다. 우리는 빛을 본다. 그리고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게 된다. 환희와 행복을 느낄 뿐 아니라, 뒤돌아보면 두려움이 상상했던 것처럼 끔찍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거절했지만,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집을 팔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즉, 지금 집을 팔까 생각중인데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이 강사는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승낙의 가능성에 더 가까이 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거부와 거절을 아주 두려워한다. 하지만 거절을 감수하지 않으면 승낙 역시 결코 얻을 수 없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거절을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정말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리 무서운 일이 아니다.
두려움을 이겨내는 능력에 따라 삶에서 많은 것을 얻는 사람과 전혀 얻지 못하는 사람이 나뉘고,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과 그것을 넘어서는 사람이 나뉜다.
두려움은 불확실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며, 우리에게 꼭 맞고 완벽한 모든 것들을 끌어올 힘과 능력이 있다는 사실 역시 알지 못한다. 스스로를 신뢰하고 믿을 때, 우리는 모든 순간이 완벽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누군가 우리에게 거절하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이 그 시점에서는 우리에게 맞지 않거나 완벽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고 수용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생각에 의존하지 않게 된다. 그것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신념이 있는 사람은 수많은 거절의 순간 속에서도 더 크고 더 나은 것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확신과 자신을 가지고 기다린다. 반대로 길을 잃고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은 그의 진정한 자아가 깊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거리의 청소부에서부터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모든 이는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에는 순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어떤 사람은 용감하게 그것을 느끼고,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뚫고 나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변화하지 않으면 어떤 누구도 우리를 대신해주지 않을 것이다. 예수나 부처가 우리를 구워하기 위해 다시 돌아오지는 않는다. 변화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우리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 변화는 내면에서 일어난다. 여기에 다른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지름길도 없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길을 선택한다. 용감해질수록 우리는 더 멀리 갈 수 있고, 그 길 위의 가능성 역시 더 많아진다. 반가운 소식은 두려움이라는 것이 단지 우리의 마음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두려움은 우리가 창조한 것이며,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우리 자신뿐이다. 믿음과 기억들은 지워질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기억이나 신념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자유는 이 과정에 달려 있다. 마음속에 만들어놓은 감옥을 버릴 때 우리는 비로소 영혼의 문을 열고 자유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용기처럼 두려움과 고통 역시 선택적인 것이다. 그것들은 매 순간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많은 경우, 길 한가운데서 멈춰서 과감히 변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삶을 시작하기 위해 어떤 면에서는 먼저 죽어야 한다. 내가 말하는 죽음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진짜가 아닌 것들의 죽음을 말한다. 그것은 우리라고 믿어왔던 것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보였던 이미지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여했던 이미지들의 죽음이다.
두려움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상상하는 좋지 않은 일들이 실제 일어날 것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두려움 역시 산을 움직일 수 있다. 언젠가 '삶에서 일군 성공은 우리가 성취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해야만 했던 두려움에 의해 평가할 수 있다'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행복은 모퉁이, 많은 사람들이 쉽사리 용기내어 돌지 못하는 모퉁이만 돌면 존재하고 있다.
6. 사랑
우리는 나쁜 습관을 많이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런 습관들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물려준다. 이것이 우리가 삶을 사는 법을 배우는 방식이다. 그리고 우리는 더 나은 길을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랑과 인정을 얻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며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 배움의 과정 속에는 불행히도 우리 자신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빠져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우리가 자신을 대하는 대로 우리를 대한다. 이렇게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과 인정을 받으려는 소망 역시 차단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이러한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속이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한 행동은 효과가 없다. 나에게 효과가 없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어머니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포기하고 자녀들을 위해 희생하는데, 사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녀들은 그것을 모범으로 삼아 엉뚱한 곳에서 사랑을 찾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우리가 바른 자리에 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 역시 올바른 자리에 있게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하고, 어떤 식의 행동을 통해 사랑을 얻으려고 할수록,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을 경험할 가능성은 점점 멀어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데 초점을 두지 않고, 매 순간 우리의 삶을 즐기며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다. 변화의 가장 강력한 도구는 우리 자신의 존재를 향한 사랑이다. 사랑은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 사랑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사랑은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엉뚱한 곳에서 사랑을 찾느라 허비해버린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항상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범하는 또 다른 큰 실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배우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이 우리가 그렇게 동경하는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찾았다고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완전하지 못하다고 느끼면서, 대개 자신 안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 속에서 찾고는 하지만 이것은 시간 낭비다. 사랑은 스스로의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 일단 그것을 찾아냄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기 시작하면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마침내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원하고 선택함으로써' 그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된다. 필요가 아니라 선택에 의해서 자유롭게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의 부족 때문에 우리는 진실한 사랑을 하지 못한다. 진실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대개는 소유하는 사랑을 한다. 예를 들어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아이들은 우리의 생각과 의견들, 개념들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또 가끔 우리는 질투가 느껴지는 사랑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의 머릿속에서 돌아가고 있는 오래된 테이프들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생각들과 기억들을 통해 본다.
하와이에서 내려오는 호오포노포노에서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의 도구를 사용한다. "사랑합니다"와 "고맙습니다"라는 말이다. 우리가 그 말을 소리 내어 말하거나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그 말은 아주 강력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또 가끔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을 때에도 다음과 같은 연습을 하는 것은 아주 강력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당신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거나 당신을 힘들게 하는 말을 했다고 치자. 그때 당신은 그 사람들에게 대응해서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거나 그들에게 당신이 옳다는 것을 확신시키려고하는 대신, 마음속으로 가능한 많이 이 말들을 반복할 수 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러한 도구들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그 사람이 먼저 용서를 구해오는 것이다. 다른 경우에도 상황은 여전히 똑같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거나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 어려움의 정도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이야기와 테이프가 존재할 수도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사건, 사람들,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모든 일은 그들의 인식과 관점, 그리고 기억에 달려 있다. 인생은 우리가 예전에 이미 여러 번 보았던,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는 영화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우리가 그 영화에 따라 매번 반응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문제에 대해 반응하는 것은 기억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 문제들은 우리가 이미 과거에 마주쳤지만 해결하지 못했던 장애물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모든 상황은 우리에게 다른 방향으로 반응할 기회를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끔 우리의 내면에서 설득할 필요가 있는 부분들을 보여주기 위해 사람들이 우리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반응하지 않을 선택권이 있다. 우리는 다른 뺨, 즉 사랑의 뺨을 내밀 수 있다. 이것을 이해하면 우리는 의식적으로 온전한 책임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자녀들에게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들이 잠들어 있을 때 그들에게 조용히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당신이 그들을 사랑한다는 말과 당신의 삶 속에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는 말뿐이다.
아이들이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당신의 관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당신이 옳으며 아이들이 틀렸다고 납득시키려고 하는 것도 생산적인 일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무엇이 가장 알맞은지를 아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알맞은 것을 우리가 알 수 있겠는가?
감사함 역시 아주 강력한 도구이다. 우울함과 슬픔이 느껴질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삶속에서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좋은 것들을 모두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에너지는 급격히 변화하고, 우리는 문제를 넘어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게 된다. 가끔 우리는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사랑까지 포함한다.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그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행복에 이르는 비밀은 외부를 보거나 더 많은 것을 구하는 데 있지 않다. 비밀은 자신을 사랑하고 더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다.
7. 가장 빠르고 쉬운 길
신성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온전한 책임을 지는 것, 용서를 구하고 우리 자신을 잘 돌보는 것뿐이다. 그게 전부다!
백퍼센트 책임을 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우리의 시야를 흐리게 하는 것이 단지 '오래된 프로그램'임을 깨닫는다면, 그리고 외부의 요인들에 대한 비난을 멈추고 온전한 책임을 지기로 결심한다면 바로 그때 천국의 문이 열리고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의 상태에 이를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우리가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에 화를 내면,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잃게 된다. 미워하고 비난하는 자신의 감정에 묶이게 되고, 그 감정의 노예가 된다. 이런 식으로는 스스로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용서를 통해 자유로워질 수 있다. 용서는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용서했다고 다른 사람 앞에서 소리 내어 말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내면의 작업이다. 우리가 "창조주여, 미안합니다. 이런 상황이나 문제를 창조한 나의 내면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용서해주세요"라고 말할 때, 신과 우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내 경우에는 화를 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사라져버리거나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중심으로 돌아올 때까지, 자신을 깨닫고 깨어 있을 때까지 분노는 단지 몇 분 정도만 지속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내가 이것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나의 생각입니다. 이것은 내 자신의 프로그램, 기록, 인식의 결과입니다. 나는 그것을 지울 수 있습니다."
이 간단한 과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화를 가져다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가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어떻게 그녀가 나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지?'와 같은 생각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변화하거나, 특정한 방식으로 반응하거나, 특별한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 기대하지도 않는다.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외부의 사람이나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또 내 자신이 완벽하기를 기대하지도 않으며 온 세상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누구에게도 내 관점을 납득시킬 필요가 없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유의지가 있으며 그들 전부 똑같은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웠고, 이러한 사실은 나에게 커다란 내면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좋고 나쁜 것 역시 우리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진 한계들일 뿐이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돌볼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 역시 사랑하고 돌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 자유로운 과정의 핵심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우선 우리의 삶에 대해 완전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미안합니다. 이 상황과 문제를 창조한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용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렇게 우리가 책임을 지고 용서를 구하는 과정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스스로를 용서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공유하고 있는 기억들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이러한 기억들이 지워지도록 용서를 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기억들이 당신의 의식에서 지워지면 다른 사람들의 의식에서도 지워진다. 하지만 이 정화 작업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의 아름다움은 그 혜택이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내맡김과 지성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중요하다.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에게 완벽하고 알맞은 것을 알고 있는, 또 어떤 일을 이루는 데 최선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우리가 이것을 허용하면, 그렇게 알고 있는 그 부분은 우리의 모든 문제들이 가장 알맞고 완벽하게 해결되도록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이 '정화'의 결과를 보기 위해서는 호흡하듯 매 순간 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숨 쉬는 것을 잊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정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화는 항상 행해져야 한다. 물론 우리는 인간이라 많은 순간 정화하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다. 또 많은 순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반응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가능한 자주 연습하는 것이다. 비록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거나' 문제가 일어날 상황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왜 그럴까? 마음은 항상 테이프를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때에도 우리가 기록한 프로그램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다해스럽게도 우리에게는 그것을 지울 수 있는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생각들과 기회들이 삶 속에서 나타나도록 할 수 있다. 많은 경우, 그 경험들은 우리가 거의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와 사람들로부터 오게 될 것이다.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인생을 통해 반응하고 고통받는 것을 연습해왔다. 이러한 반응과 고통은 우리의 삶 속에 너무 깊이 들어와 우리는 거의 자동적으로 반응하며 괴로워할 정도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이런 일에 있어 전문가이자 스승들이며, 심지어 이런 삶의 방식에 중독되어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처음에는 정화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숨 쉬는 것처럼 매일의 삶 속에서 정화하는 법을 배우면, 저절로 정화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느낌이 변하고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변화를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깊은 내면의 평화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비밀은 마음을 열고 유연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디에서 그 결과가 나타날 것인지를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알맞은 것이 오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기대하던 것들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우리에게 알맞은 것이 될 것이다. 기대한 것을 취하지 못했다고 해서 응답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것 자체가 하나의 시험이거나, 혹은 우리가 아직 그것을 받을 자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청하고 그것이 올 수 있도록 허용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결과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려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우리에게 가장 알맞고 완벽한 것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또 신뢰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우선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마음 속에 있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들의 문제를 이야기한다면, 그들은 단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기억들을 정화하고 지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우리들의 스크린이며 모니터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사람들은 고통이나 병을 다루지만 문제가 있는 곳은 그곳이 아니다. 문제는 테이프가 돌아가고 있는 기억 속에 존재한다! 그것이 어떤 문제인지를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떻게 그것을 찾아낼 수 있을까? 우리는 문제가 되는 것이 어떤 기억인지 혹은 어떤 기록인지 알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신(사랑)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은 허용하는 것뿐이다. '고마워', '사랑해'란 말들을 반복하면 신은 이러한 기억들과 그 테이프에 있는 다른 기억들을 포함하는 프로그램까지 지워준다. 비록 우리가 그것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에도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허용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사랑)은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매 순간 삶 속에서 우리는 백 퍼센트의 책임을 지고 우리의 프로그램을 지울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다. 하지만 보통 우리는 반응하고, 걱정하고, 의견을 가지고 판단한다. 이것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다. 문제들이 실제로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의견과 판단이 진짜 문제이다.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경우는 놓아주지 못하고 반응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진정한 우리의 모습, 즉 진정한 자신을 희생하게 된다.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항상 옳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하나는 진정한 우리의 존재에 따라 사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테이프에 따라 사는 것이다. 전자는 스스로 신성의 영감에 인도되도록 우리를 허용하는 것이고, 후자는 전에도 효과가 없었던 진부하고 낡은 프로그램에 따라 사는 것이다. 우리가 더 많이 지우면 지울수록, 우리는 진정한 우리의 모습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다. 정화를 통해, 그리고 호오포노포노의 도구들을 이용함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도구들을 이용함으로써 우리는 온전한 책임을 지고 "미안합니다. 내 안에서 이런 문제를 일으킨 것이 무엇이든, 용서해주세요"라고 말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우리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정화를 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우리가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일까? 자유롭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선택해왔던 믿음 속에서 거짓으로 살아가는 삶에 지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충분히 고통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나'의 평화
나의 모든 평화가 당신과 함께하길.
'나'인 평화, '나를 있게 한 나'의 평화.
항상 있었고 지금도 존재하며
앞으로도 영원할 평화.
'내'가 당신께 주는 나의 평화,
'내'가 당신께 맡기는 평화.
세상의 평화가 아닌 오직 나의 평화.
'나'의 평화.
역자 후기
"지성은 알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또 지성이라는 선물의 의미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그 선택은 우리 안에서 반복되는 기억에 매여 있을 것인지, 아니면 그 기억에 대해 온전한 책임을 지고 정화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이미 검증된 '의지에 앞서 생각이 먼저 일어난다'는 내용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이 외부 대상에 대한 규정이나 계획이 아니라, 이미 그렇다고 규정하고 있는 내면의 기억들과 믿음들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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