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기결정성-모든 것은 당신이 직접 선택한 결과다
상황 자체를 바꿀 수는 없어도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건전한 사람은 모든 이가 괴로워하는 상황에서도 배울 점과 감사할 일을 찾아낸다.
인간은 과거에 얽매어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가 우리를 규정한다. 과거의 원인이사건을 '설명'해 줄 수는 있어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직장이나 가정에 재판관은 필요 없다. '잘못한 사람'을 가리느라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기보다는 그 에너지를 미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생산적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상사나 부하, 배우자가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먼저 집중해야 한다.
만약 상대가 알아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상대를 탓하지 말고 전달 방식을 바꾸어라.자신의 말이 설득력을 갖추도록, 상대에게 신뢰감을 주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이 명백하더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에너지를 쏟는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인지'라는 주관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들러를 원류로 하는 현대 심리학의 시각이다.
인간은 상황을 어떻게 '인지'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반응, 즉 감정, 사고, 행동을 바꿀 수 있다.
혼나서 화가 나고, 그 때문에 의욕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혼났을 때 발생하는 수많은 '인지'와 '의미 부여' 중에서 당신의 의지로 분노를 선택했고, 그것을 핑계 삼아 의욕을 없앤 것이다.
2.열등감-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라
목표가 있는 한 열등감은 생기기 마련이다.
열등감은 주관적인 것이다.
열등감을 느끼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관건이다.
열등성 - 구체적인 사실
열등감 - 주관적으로 생각하는것
영등 콤플렉스 - 열등감을 핑계로 주어진 일에서 도망치는 것
인간은 올바른 행동으로 주목받지 못하면 때로 '그릇된 주목'을 받으려 한다. 인생을 비참하게 만드는 짓은 당장 그만두는 것이 좋다.
우월을 추구하는 노력
'그릇된 주목'을 갈구하기보다는 작지만 '올바른 주목'을 받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세 보이려 노력하지 말고 강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진정한 자신감을 갖춘 사람은 그것을 과시할 필요를 못 느낀다. 우월함을 드러낸다는 것은 열등감을 느낀다는 증거다. 우월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강해지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강해 보이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다.
자책이나 자해. 결국 그는 사과와 동정을 손에 넣기 위해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다. 이렇듯 자신이 중요한 존재임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수단은 매우 다양하다.
일에 파묻혀 가정을 돌보지 않는 남편에게 아내는 처음에는 일찍 들어오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남편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울기도 한다. 그래도 안 되면 부인은 남편에게 복수를 결심하고 자기도 놀러 다니며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든 걸 포기하고 자신의 나약함이나 실망,병 등을 남편 탓으로 돌린다.
아들러는 과도한 열등감으로 이어지는 자학적인 사고와 자신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잘못된 사고방식을 '기본적인 오류'라고 불렀다. 이런 생각은 냉정한 시각을 갖는 것만으로도 자연히 사라진다. 지나친 억측이며 바람직하지 못하다.
완전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완전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자기수용 -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Even if (행여 결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I'm OK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야말고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용기'이다.
3.감정사용법 - 감정에는 숨겨진 목적이 있다.
인간은 자신의목적을 위해 감정을 사용한다.
감정은 주로 두 가지 목적으로 사용된다. 하나는 상대를 조종하여 지배하기 위해서다. 화난 표정이나 태도로 상대를 위협하여 자기 마음대로 상대를 조종하고 지배하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기 자신을 움직이기 위해서다. 인간은 감정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유발한다. 즉 감정이 '자신의 등을 떠밀어 주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진정한 어른이라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성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해야 한다. 언어라는도구를 사용하여 이성적인 대화를나누면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상대방의 힘을 빌리면서 자신도 상대에게 힘이 되어 주고 협력하면 서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무조건 울고 소리 지르고 질투하며 감정을 이용해 타인을 내 멋대로 조종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과 달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달성할 능력을 갖고 있다.타인을 조종하지 않아도 혼자 얼마든지해결할 수 있다. 자기 일은 자기가 책임지는 것, 그것이 어른 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이다.
'아는데도 할 수 없다'는 것은 그냥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아들러는 '의식과 무의식', 이성과 감정'처럼 대립하는 요소를 구별하여 설명하는 것을 부정했다. 언뜻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호 보완하는 같은 개념이라는것이다.
자기 의지로 판단한 뒤 먹는 행위를 '선(유익한일)'으로 선택한 것이다.
자신과 타자에 대한 변명
라이프 스타일이란 대상을 받아들이는 방식 및 인지의 핵심을 이루는 기본적 신념이다. 인간은 상대방의 언행이나 어떤 사건이라는 자극에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그 사람이 받아들이는 나름의 방식, 즉 인지가 있다.
4.라이프 스타일 - 성격은 지금 이 순간 바꿀 수 있다.
자기개념 : '나는 ~이다'
세계상: '세상 사람들은 ~이다'
자기 이상: '나는 ~이어야만 한다'
성격의 근원에는 이 3가지 가치관이 자리한다.
라이프 스타일은 대부분 열살 무렵에 완성한다.
환경 영향이 전혀 없지만 않겠지만 그런 성격을 받아들인 것은 자기 자신이다. 받아들일지, 반발할지, 무시할지는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스스로 바꿀 수도 있다.
행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은 '커먼 센스'와 완벽히 일치한다. 비뚤어진 개인적 논리에 뿌리를 둔 성격은 행복해질 수 없다.
우선 현재 라이프 스타일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그 근본에 있는 핵심적 신념, 즉 '자기개념', '세계상', '자기이상'을 구체화 해야 한다.
5.대인관계 - 인간의 모든 고민은 대인 관계로 귀결된다.
내면의 고민을 토로하는 것 같은 말도 결국 상대가 있기 때문에 그 상대에게 자신의 우위성을 드러내려는 목적이 숨어 있다. 이것을 이른바 '사용의 심리학'이라고 한다.
우리의 모든 말과 감정에는 상대가 있고 목적이 있다.
모든 고민은 대인 관계로 귀결된다. 이를테면 일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거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고민도 결국 대인관계에 기인한다. 만약 일이 잘 안풀리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상사나 주위 사람들이 괜찮다고 말해 준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일 자체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상사나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즉 대인 관계에 기인한다.
하지만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이를테면 주변에서 괜찮다고 해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결국 회사에서 쫓겨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그 또한 대인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본다. 즉 '실직할지도 모른다'는 고민은 '회사나 사회라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염려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공헌해야 할지 늘 고민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인 관계 그 자체다.
다른 사람은 당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해 주지 않는다'는 고민은 본인만 생각하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다.
'나한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 '나를 소중히 대해 주지 않아', '내 의견을 받아들여 주지 않다' 등과 같은 이유로 상대를 동료라고 여기지 않는 사람은 큰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분명 '자기만' 생각하고 있다.그런 식으로는 교우 관계의 과제를 해결하기 어려우므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건전한 인간은 설령 자신의 기대와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도 동료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당신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또한 당신만이 세상의 중심에 있는 것도 아니다.한 사람 한 사람이 공평하게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며, 누구나 중심에 서 있다. 당신만의 특별한 권리가 아니다.
교우관계는 업무 관계와 달리 명분이나 역할 등이 없는 자유로운 세계다. 그래서 더욱 어렵다. 업무 관계에서는 확실히 드러나지 않던 그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과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나를 ~해 주지 않는다'며 상대방을 동료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교우 관계에서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교우 관계보다 어려운 애정 관계에서도 똑같이 상대를 비난하며 힘들어할 것이다. 모든 관계에 같은 라이프 스타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까운 사람의 충고를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다.
배우자를 복종시키려고 하거나 자기보다 못났다고 비난한다면, 그 결혼 생활은 결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내가 상대방에게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내 요구를 얼마나 들어주는가'가 아니라 '내가 상대방에게 무엇을줄 수 있는가', '상대방을 얼마나 기쁘게 해줄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이 '나는 늘 옳아. 상대가 틀렸어'라고 생각한다면 좋은 관계가 유지되기 힘들다. '나보다 못난 저 사람을 가르쳐야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평등한 관계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배가 말로만 드러나라는 법은 없다.물리적,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기 위해눈물을 흘리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병을 이용하는 경우 또한 힘에 의한 지배라고 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두 사람이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받기보다는 주기 위해 노력한다면 애정 관계와 결혼 생활의 과제가 해결되어 행복이 찾아올 것이다.
6.가족 - 가족이 곧 세계다
아이에게 가족은 '세계 그 차제'이므로,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아이는 살아갈 수 없다. 부모의 사랑을 차지하기위한 목숨을 건 전략이 그대로 성격 형성으로 이어진다.
아이는 부모로부터 외면받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한없이 연약한 존재가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사망 선고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기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이 아이들은 전혀 다른 것 같지만 모두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끌기 위해서 각자 자신의 전략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아이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의 전략을 시험한다.그리고 그 중에서 성공한 방법을 어른이되어서도 성공 사례로서 계속 사용한다.그것이 그 아이의 라이프 스타일이 되는 것이다.
가족 가치는 아이의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아이의 성격이 부모의 가치관에 의해 '원인론'적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의지로 복종할지 반항할지 정한다. 늘 '자기 결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이는 부모의 기대나 꼬리표에 부응하려고 노력한다.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부모가 붙인 꼬리표를 연출함으로써 주변으로부터 주목받거나 주위에 웃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려는 경우도 있다.
7.학습 - 혼내서도, 칭찬해서도 안 된다.
상이나 칭찬에 이끌려 행동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이나 칭찬이 멈추면 행동 또한 멈출 것이다.
당근과 채찍, 즉 칭찬과 벌로 조종당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은 자신을 칭찬해 주지 않는 상대에게 적대감을 가진다. '왜 칭찬해 주지 않지?'하고 상대를 탓한다. 우리는 그 누구도 조종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진정한 해결책은 대등한 눈높이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혼내거나 벌을 주거나 위협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상대에게 간단한 설명과 친밀한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관계라면 상대는그것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신뢰를 쌓는 것이다.
가능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분위기가 누그러졌을 때 '나는 네가 그렇게 해주면 기쁠 것 같아" 혹은 "네가 이런 행동을 하면 무척 슬퍼져'라며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를지배하거나 조종하려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내 감정을 전하는 데 그쳐야 한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의 의지로 고칠 때까지 지켜보아야 한다.
혼내는 것은 나쁜 습관을 들이는 최고의 훈련이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비교할 필요가 있다면 '과거의 그 사람'과 '현재의 그 사람'을 비교하자.
"이 경험을 통해 상대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8.공동체 감각 -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익을 중요시 하는 것, 받는 것보다 많은 것을 상대에게 주는 것,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낀다면, 주변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나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한다.
누군가 시작해야 한다. 보상이 전혀 없더라고,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웃이 당신을 사랑해 주지 않더라도 당신이 먼저 사랑하라."
자신부터 시작하면 된다. 보답을 바라지 말고 허락도 구하지 말고. 그것이 시작이다.
공동체 감각이 낮은 사람 + 활동성이 높은 사람 = 주변 사람을 지배하는 사람
공동체 감각이 낮은 사람 + 활동성이 낮은 사람
= 1.상대로부터 빼앗는 사람:그는 다른 사람이 뭔가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감사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사람을 싫어하고 화낸다.
2.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원만하지 않은 인간관계를 귀찮게 여기며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숨어 버리는것. 신경증환자
낮은 공동체 감각 : 아들러는 그들이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느끼고, 그 보상으로서 문제 행동을 일으킨다고 정의했다.
"일에서 실패하지 않았어요. 일을 안 했거든요.", "인간관계에서 실패하지 않았어요. 사람들 속에 들어가지 않았거든요." 이런 사람의 인생은 완전하지만, 최악이다.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연료가 되는 '용기'와 이정표가 될 '공동체감각'만 있으면 모든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
권리를 존중하고 스스로 결정하게 하면 그는 자신을 믿고, 타인을 믿게 될 것이다.
강요하면 대립과 권력 투쟁이 일어난다.
강요와 대립을 반복하면 상대의 공동체 감각은 자라지 못한다. 혼나고 강요당하다 보면 열등감이 강해져 자기 신뢰를 잃고 만다. 또한 강요만 하는 상대를 적으로 여기기 때문에 타자에 대한 신뢰도 잃어, 결국 사회에서 자리를 잃어버린다.
공동체 감각을 키우는 첫걸음은 강요를 멈추고 타인에게 존중받는 경험을 늘려 주는 것이다.
'감사'는 평등한 시선, '칭찬'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다.
매일 아침 생각난 '상대를 기쁘게 만들 방법'을 적은 뒤 가능한 것부터 실행한다.
자기보다 상대를 소중히 여기면 공동체 감각이 높아진다.
나와 다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당신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이 당연하고 그렇기에 의미가 있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상대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용서해라.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간적이고 사랑스럽다. 그 정도의 아량은 서로 베풀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신용이란 근거나 담보를 전제로 상대를 믿는 것이다.하지만 신뢰는 신용과 반대로 근거나 담보가 전혀 없이 상대를 믿는 것이다. 근거가 없으면 상대에게 배신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배신당할지라도 믿는 것, 그것이 신뢰다.
아들러가 제창한 공동체 감각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자기 신뢰와 타자 신뢰는 모두 근거 없이, 배신당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믿는 것에서 출발한다. 상대를 의심하면 신뢰 관계는 형성될 수 없다. 무조건 믿어야 한다. 그리고 신뢰 관계 역시 당신이 먼저 시작하면 된다. 그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며, 공동체 감각을 높이는 방법이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감사를 구하지 말고 바람직한 길만 보고 행동하라. 다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보는 이가 없더라도 바른 일을 해나가라는 의미다.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모를 때는 보다 큰 집단의 이익을 우선한다. 나보다는 동료. 동료보다는 사회 전체를.
9.용기 - 어려움을 극복할 용기를 가져라
아들러 심리학의 목적은 늘 인생의 모든 문제에 직면하는 개인의 용기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살다보면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업무 관계, 교우 관계, 애정 관계들이 차례로 공격해 온다. 그리고 그 어려움으로 인해 우리의 공동체 감각은 시험대에 오른다. 여유가 없을 때도 상대를 생각하고 상대를 우선시하는 공동체 감각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매일 시험대에 오른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아들러는 '용기'라고 불렀다.
인간은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준다'고 느끼고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될 때만 용기를 얻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주변 사람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된다. 주변 사람의 행동에 대해 "고마워요","당신이 있어서 큰 힘이 되었어요"라고 전하는 것이야말로 상대에게 큰 용기를 준다.
아들러는 "용기란 공동체 감각의 한 측면"이라고 말했다. 용기란 곤란한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생각하고, 상대방을 우선시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이다. 용기가 없는 사람은 어려움이 닥치면 자기만 생각하기에 급급하다. 공동체 감각 따위는 내팽개치는 것이다.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 즉 용기가 없는 사람은 타인의 평가에 신경을 쓴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베풀 것인가?'보다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용기 있는 사람은 타인의 평가 따위에 신경 쓰지 않는다. 칭찬하거나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어도 자기가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에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다.
용기를 준다는 것은 상대가 타인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더 잘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든 상관 없다' 또는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고 깨닫는 것이 용기이다. 이는 불완전한 자신을 인정하는 용기로도 이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일을 할 수 있으면 당신을 인정할게요", "그걸 못하면 당신을 인정할 수 없어요"와 같이 상대가 하는 일에 조건을 달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칭찬한다는 것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즉 상하 관계일 때 일어난다. 용기를 주려면 상대를 평등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아니라 평등한 시선으로, 칭찬하지 말고 감사할 것. 그래야 상대가 용기를 얻을 수 있다.
상대방이 서툰 이유는 지금 단계에서 아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능력 부족과 상대의 가치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일을 잘 못하더라도 상대가 스스로의 가치를 부정당했다고 느낄만한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또한 능력이 부족한 것은 현재 상황일 뿐, 앞으로 잘해 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상대방의 용기를 빼앗는 것은 상대가 그 가능성에 도전하려는 용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다.
우리는 의식하지 않는 사이 다른 사람의 용기를 꺾곤 한다. 용기를 주기도 전에 꺾기부터 하면 안된다. 격려를 해주어야 한다.
어두운 것이 아니라 얌전한 것이다.
느려 터진 것이 아니라 꼼꼼한 것이다.
성질이 급한 것이 아니라 재빠른 것이다.
참견하는 것이 아니라 친절한 것이다.
실패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도전을 하는 것이다.
공감이란 상대방의 눈으로 보고, 상대방의 귀로 듣고, 상대방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공감한다고 생각하면서 잘못된 행동을 한다.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듣고 내 마음으로 느낀 것'을 상대방에게 적용하여 공감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시각을 강요하지 않는지 늘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런 잘못을 피할 수 있다.
명령조보다는 부탁하는 말투나 I-message.
애초에 '화'란 2차 감정이다. 1차 감정인 '서운함', '분함', '슬픔'이 먼저 있고, 그것을 상대방이 몰라주었을 때 '화'로 바뀌는 것이다. 그럴 때는 "왜 함부로 남의 걸 먹는 거야!"라며 2차 감정인 '화'를 전하기보다는 1차 감정을 나 전달법으로 전하면 된다. "아, 난 정말 먹고 싶었어. 난 좀 서운하네."
가족 구성원 안에서의 부모나 기업 조직의 관리자는 자신이 내뱉는 말이 상대방에게 자신감을 주는 상대방의 자신감을 없애는지, 즉 용기를 주는지 용기를 짓밟는지 늘 생각해야 한다. 실패를 피하게 하려고 한 말이 오히려 용기를 짓밟는다면 실패를 경험하게 하는(주스를 엎지르게 하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용기를 얻을 수 없을 테니까.
자못을 지적하지 말고, 원인 규명이라는 비난도 하지 말고,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하고 제안하라. 그것이 바로 상대를 성장하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낙관적인 사람이 되어라. 과거를 후회하지도 말고, 미래를 불안해하지도 말고, 지금 '여기'만 보는 것이다.
용기가 있는 사람은 모두 낙관적이다. 비관적인 사람은 과거의 실패를 들춰 보며 미래를 걱정하지만 낙관적인 사람은 지금 현재에 집중한다. 지나 버린 과거를 붙들고 끙끙 앓지도, 미래를 불안해하지도 않고, 지금 현재 가능한 것에만 집중한다.
"비관주의는 기분에 속하고 낙관주의는 의지에 속한다."
10.과제의 분리 - 다른 사람의 과제를 짊어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를 명확히 하는 것은 간단하다. 그 문제를 방치했을 때 불이익을 입는 이가 누구인가 곰곰이 따져 보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다.
아내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남편이 책임감을 느껴서는 안 된다. 기분이 좋고 나쁜 것은 아내의 과제다. 그 과제를 멋대로 짊어지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아내가 우울해하면 남편은 달래려고 애쓴다. 자신이 무능해서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드라이브 갈까?" 아니면 "산책 갈래?" 하며 달래 보지만 그 어떤 말을 해도 아내는 나가고 싶지 않다며 거부한다. 그러면 남편은 점점 짜증이 밀려와 이내 폭발해 버린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대체 뭐가 불만이야!" 결국 그날 두 사람은 최악의 기분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 경우는 남편이 아내의 감정이나 기분을 자기 멋대로 조종하려고 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야말로 남편이 아내의 과제에 끼어든 셈이다. 이대로라면 둘의 관계는 삐걱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아내가 기분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남편이 짜증 나더라도 군소리 없이 꾹 눌러 참았다고 치자. 그러면 남편의 문제는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여전히 남편에게는 문제가 남는다. 상대가 어떻게 느끼는가는 상대의 과제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책임이라며 짊어진다는 것은 아직 과제의 분리가 되지 않은 것이다. 상대의 과제에 책임을 느껴서는 안 된다. 상대의 과제를 자기 멋대로 짊어지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상대와 선을 긋고 명확히 분리해야 한다.
뒤에서 욕을 하든 싫어하든 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상대가 당신을 어떻게 느끼느냐는 그 사람의 과제다.
"나는 나를 위해 살고, 당신은 당신을 위해 산다. 나는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당신도 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 당신은 당신. 하지만 우연이 우리를 만나게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멋진 일. 설령 만나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나는 나. 당신은 당신. 당신은 당신. 나는 나." - 프레더릭 솔로몬 펄스 Fredrick Solomon Perls
"신이시여, 바라건대 저에게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인내와, 둘의 차이를 이해할 지혜를 주소서." - 라인호드 니버 Reinhold Niebuhr
타인의 감정이나 행동을 조절할 수는 없다. 불가능한 것을 하려고 하니까 괴로운 것이다. 상대의 과제에 끼어들지 말고, 자신의 과제에 상대를 끌어들이지 않으면 된다.
상대가 당신을 좋게 평가하든 나쁘게 평가하든 그것은 상대의 과제다. 가령 뒤에서 수군댄다고 해서 당신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면 밀어붙인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니까 힘들어진다. 과제를 분명히 분리하면 된다.
'과제의 분리'가 가능할 때 비로소 행복한 인생을 향해 한 발 나아가는 것이다.
최근댓글